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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대흥사-미황사-윤선도고택

맑은 바람 2022. 6. 26. 15:24

一泊二日 동안 욕심을 좀 부렸다.

금요일 아침 일찌감치 출발해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변산반도에 다다라 <능가산내소사>의 꽃창살을 보고 채석강의 日沒을 본 후 해남까지 가서 대흥사 <유선여관> 장작불로 덥힌 따끈한 온돌에서 잔다.

다음날 아침 두륜산대흥사를 둘러보고 절간에 있는 찻집에서 명상음악을 들으며 우전차 한 잔 마시고, 詩的 靈感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달마산 美黃寺를 찾는다. 매표소에서는 절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더니 전나무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남한의 금강산이라는 비유가 딱 맞아들게 달마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가운데 단청을 입히지 않아 질박한 느낌이 드는 미황사가 그 수수한 모습을 드러낸다.

육지의 최남단 땅끝에 서서 남해의 출렁이는 바닷물에 켜켜이 쌓인 시름, 실패에서 실 풀어내듯 모두 풀어놓고 다시 돌아서서 올 한 해 힘차게 달려보리라 하다가, 안 돼지! 넘어지면 이제 부러지는 정도가 아니라 부서지는 나이이니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여울목 징검다리 건너듯 한 해를 건너리라 하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귀경길, 윤선도의 종택 녹우당 앞뜰에 앉아 비자나무숲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강직했지만 노비들에게 넉넉했던 윤선도를 잠시 묵상했다.

밖으로 나와 고산유물관을 둘러보다가 충격적인 사건을 접했다.

孤寂한 곳에서 너무도 열심히 관광객 안내를 하는 목소리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 들으니 처음엔 몰랐는데 발음이 이상했다. ‘이라고 써야 할 때 이라고 쓴다든가, 받침을 정확히 소리 내지 못하는 것 등등--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나라 사람 아니죠?"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네, 맞아요. 중국 길림성에서 온 중국인이예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가슴이 아려왔다.

 

한문이 양반의 전유물이던 조선시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 시조문학의 꽃을 피운 고산 윤선도가 아닌가!

한때는 고산의 전기나 고산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써보고 싶은 욕심도 가져볼 정도로 고산을 좋아했는데, 내 나라 사람은 다 어디가고 이방인이 이곳을 7년째 지킨다니-- 아무래도 하던 일 다 집어치우고 내가 여기로 와야 할까 부다.

 

밖으로 나오니 봄을 부르는 비안개가 소리 없이 내리고 어느새 내 가슴도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2006. 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