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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

맑은 바람 2025. 4. 3. 22:57

--푸시킨 詩選集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지음/오정석 옮김/더클래식/183쪽/초판1쇄 2018.8/읽은 때 2025.3.30~4.3


푸시킨(1799~1837)향년 38세
몰락한 귀족 가문의 장남/어머니는 한니발 장군 후손/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외무성에서 근무/32세에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결혼/아내의 연적과 결투를 벌이다 치명상을 입고 사망/작품 <차르스코예 마을에서의 회상><자유에 바치는 노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서사시:루슬란과 루드밀라> <희곡:루살카><카프카스의 포로><깊은 시베리아 광산에서><예브게니 오네긴><집시들><대위의 딸><시인> 등이 있다./19세기 러시아문학의 황금기를 엶/그의 작품은 고골,투르게네프,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 같은 러시아 거장 문학가들의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

1장 귀족학교 시절(1813~1817) 14세~18세
*나의 묘비명
여기 푸시킨 고이 잠들다.어린 뮤즈와 함께
사랑과 함께 즐거운 시절을 보냈던 고인은 착한 일은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영혼은 선했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이었다.

2장 귀족학교 졸업 이후(1817~1820)
*루살카
참나무 숲 깊은 곳 호숫가에서
한 수도승이 수양을 하고 있었네
항상 경건하게 배우며
굶기도,기도하기도,일하기도 했다네
이미 수도승은 겸손 가득한 삽을 들어
자기 무덤까지 파 두었단다
어서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성인들께 기도할 뿐이었지

어느 여름 은둔 중인 수도승이
쓰러져가는 오두막 문가에서
신에게 기도 드렸네
참나무 숲은 이미 어두워졌고
호숫가에 안개가 피어오르는데
붉은 달은 구름 속에 숨어서
말없는 하늘로 미끄러지는데
수도승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네

불현듯 겁에 질린 수도승은
어리둥절 이리저리 쳐다보는데
갑자기 물결이 출렁이더니
갑자기 도로 잠잠해졌네
그리고 갑자기---한밤중의 그림자처럼 가볍고
언덕 위 쌓인 눈처럼 하얗게
벌거벗은 처녀가 나타나
말없이 호숫가에 앉아 있네

늙은 수도승을 이글거리듯 바라보면서
젖은 머리결을 빗어올리는 처녀
성스러운 수도승 공포에 젖어
아름다운 그 모습 바라보고 있네
처녀가 그에게 손을 흔들더니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유성처럼
자는 듯이 잔잔한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갔네

걱정스러운 노인은 한숨도 못 자고
하루 종일 기도마저 못 드렸네
얼빠진 영혼의 눈앞에
처녀의 놀라운 형태가 아른거리네
참나무숲은 다시 어두워졌는데
달은 구름 따라 지나가고
또다시 물 위에 처녀가
창백하니 새하얀 처녀가 앉아 있네

수도승을 응시하며 고개를 흔들고
저 멀리서 장난치듯 입맞춤을 하네
물장구를 치면서 떠들기도 하고
아이처럼 울다가 웃기도 하네
부드러운 한숨을 쉬며 수도승을 부르네---
"사제님, 사제님 이리 오세요, 저한테요!"
그러면서 물결 속으로 사라지고
주변은 온통 고요함으로 가득했네

셋째날 정열에 불타는 은자는
매혹적인 호숫가에 앉아
아름다운 그 처녀를 기다렸다네
참나무 사이로 어두운 그림자가 늘어지고
동틀 녘 여명이 밤의 어둠을 쫓아낼 때
수도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의 흰 수염만을
마을 소년들이 물에서 찾아냈다네
**푸시킨의 시<루살카>는 1819년 作이고,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는 1901년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됨

3장 남러시아 유배시절(1820~1824)
(80)죄수
어두운 철창 안에 홀로 앉아 있다
강제로 사육되는 어린 독수리 한 마리가
내 슬픈 친구인 듯 날개를 흔들며
창문 밑에서 피 묻은 먹이를 쪼아댄다.

모이를 쪼다가 그만두고 창밖을 보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이
시선과 울음소리로 나를 부른다
자, 이제 갈 시간이오!

우리는 자유로운 새들, 형제여, 같이 날자!
산봉우리 안개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 저 끝으로
바람과 그리고 내가 거니는 그곳으로!  (1822년 작)

(81)파도야 누가 너를 멈추게 했느냐
파도야 누가 너를 멈추게 했느냐
누가 너의 힘찬 흐름에 족쇄를 채웠고
누가 너의 포효하는 물살을 막고서
고요하고 탁한 연못을 만들었느냐?
누구의 마법 지팡이가
내 희망과 슬픔과 기쁨을
격렬한 영혼과
나른한 권태 속으로 잠재워 버렸느냐?

바람아 불어라 물결아 일어나라
파멸의 요새를 부셔버려라
자유의 상징 너 뇌우는 어디에. 있느냐?
속박 당한 물 위로 어서 달려가거라(1823년 작)

4장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1825~1837)
(110)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에는 참아라
기쁜 날은 반드시 올 터이니

마음은 미래에 사니
현재는 항상 어두운 법
모든 것 한순간에 사라지나
지나간 것 모두 소중하리니 (1825년 작)

(114~119)*스텐카 라진의 노래

1
넓디넓은 볼가강에
돛단배 한 척이 떠 있는데
노 젓는 어린 젊은이들은
용감한 **카자크들이었다네
배 후면에 앉은 사람은 다름 아닌 선장
바로 그 선장, 무서운 스텐카 라진이라네
그 앞에는 아름다운 처녀
사로잡힌 페르시아의 공주
공주를 본체만체하는 스텐카 라진은
어머니 같은 볼가강을 바라보네
무서운 스텐카 라진 이렇게 외치네
"아, 조국의 어머니와 같은 볼가강이여!
나 어릴 때부터 먹여주시고
긴긴 밤을 물결치며 흔들어 재우시고
몰아치는 폭풍도 이겨내서
어린 나를 지키느라 잠 못 드시네
우리 카자크 동지들에게 자비를 베풀지만
아직 우린 아무 보답도 못했다네"
무서운 스텐카 라진이 벌떡 일어나더니
페르시아의 공주를 덥석 잡아서
그 아름다운 처녀를 파도 속으로 던져서
어머니 같은 볼가강에 공양 드렸네

2
스텐카 라진은
***아스트라한을 오가며
장사를 했다네
마을대장이
선물을 요구해서
스텐카 라진은
색색의 비단 옷감을
색색의 비단 옷감을
금빛비단을 갖다 바쳤네
마을 대장이
털가죽을 내라고 하네
털가죽은 귀하고
모두 갓 지은 새것이지
하나는 수달 털가죽
또 하나는 흑담비 털
스텐카 라진은 대장에게
털외투를 주지 않았어
"이리 내놔라, 스텐카 라진
외투를 이리 내놓거라
내주면 고맙지만
안 주면 목을 매달겠다
허허벌판에
푸른 참나무에
푸른 참나무에
개 가죽을 입혀서"
스텐카 라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좋소, 대장
외투를 가져가시오
외투를 가져가시오
그리고 귀찮게 하지 마오"

3
말발굽 소리도 아니고,사람들 소리도 아니고
들판에서 들려오는 나팔 소리도 아니라네
비바람이 몰아치는 소리
미친 듯 울부짖으며 날뛰면서
나를,스텐카 라진을
저 푸른 바다로 나오라고 부르는 것이라네
"용감한 젊은이, 너는 당당한 도적
너는 당당한 도적 거침없는 난폭자
네 범선에 어서 올라타라
아마로 만든 돛을 올려서
푸른 바다로 내달리거라
너에게 배 세 척을 띄워 갈 테니
첫 번째 배에는 빛나는 금덩이를
두 번째 배에는새하얀 은덩이를
세 번째 배에는 어여쁜 아가씨를" (1826년 작)
*스텐카 라진:(1630경~1671)  러시아인. 1667년 볼가강 근처 돈강 상류지역에 전초기지를 세우고 해적질을 함.

재물과 명성을 얻고 돈강으로 돌아온 라진은 황태자 군대에 패배, 붉은광장에서 능지처참형에 처해짐.
러시아인들의 마음 속에 '민중의 영웅', '자유인의 化身'으로 남음.
**카자크:'코사크'라고도 한다. 러시아 남부 변경 군영지대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군무에 종사하던 사람들로, 말을 잘 타고 호전적이며 자유로운 습성을 지닌 사람들을 일컫는다.영화<대장 브리바>도 코사크족이다.
***아스트라한:라진과 반란군의 최후의 거점 도시, 차르의 군대에 의해 정복됨


(126)1827년 10월 19일
신이여, 내 친구들을 도와주소서
인생의 걱정과 황제가 하는 일들에
거침없는 우정의 연회장에
달콤한 사랑의 비밀에도!

신이여, 내친구들을 도와주소서
폭풍우 몰아치는 인생의
슬픔 속에
낯선 땅과 황량한 바다에
어두운 대지의 심연 속에서도!
(니콜라이 1세의 넓은 아량으로(?)푸시킨이 미하일롭스코예 마을의 유형지에서 완전 사면된 날?
1825년 페테르스브르크의 데카브리스트 봉기 때 친구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데카브리스트 봉기는 니콜라이 1세에 충성을 거부한 사람들로 조직되었다.)

 

(138)그루지아 언덕은 밤안개로 덮이고
*그루지아 언덕은 밤안개로 덮이고
내 앞에 아라그바 강도 하염없이 흐르네
내 빛이 슬픔이기에 그리 쉽게 우울해지는가
내 슬픔 속에는 너만이 가득하구나
너만을 오직 너만을--내 쓸쓸함은
결코 흔들리지도 깨어지지도 않으리
가슴은 또다시 타오르며 사랑하는데
사랑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는 것이리라(1829년 작)
*그루지아:지금의 조지아

(140)*카즈베크의 수도원
가족처럼 둘러싸인 산 위에 높이 서있는
카즈베크, 황제 같은 너의 당당한 모습이
영원한 빛에 싸여 눈부시구나
너의 수도원은 구름 너머로
하늘을 떠다니는 함처럼
보일듯 말듯 산 위에 걸려 있구나

좁은 골짜기에 작별을 고하고
저 먼 바닷가로 갈 수 있다면
자유로운 산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면
그곳 하늘의 작은 거처에서
신의 이웃이 되어 내 모습 감출 수 있다면(1829년 작)

*카즈베크의 수도원:조지아 메스티아에 있는 카즈베기 산(5054m)과 그 옆의 수도원(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교회, 2170m)은 지금은 '조지아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154)시인에게
*소네트

시인아! 민중의 사랑에 얽매이지 말아라
열광적인 칭송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소음이니
어리석은 자들의 비판과 군중들의 냉정한 비웃음 들려도
굳세게 평안하게 무뚝뚝하게 남거라

너는 왕이다, 고결한 자유를 누리며 혼자 사는
너의 자유로운 지혜가 이끄는 대로 가거라
애정 어린 생각들의 결과를 만들더라도
고결한 창작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말라

대가는 바로 네 안에 있는 법.너는 네 자신만의 심판관이니
그 누구보다 더 혹독하게 노력을 평가하는 것도 오직 너 자신뿐
까다로운 예술가여, 네 작품들에 만족하느냐

만족한다고? 그렇다면 군중이 욕을 퍼부어도 그냥 둬라

너의 불이 타오르는 제단에 침을 뱉어도 그냥 둬라
너의 발 셋 달린 의자를 개구쟁이처럼 흔들어도 그냥 둬라 (1830)
*소네트:14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의 한 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