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이야기 이청준
이청준전집 20 중단편집/문학과 지성사/392쪽/초판1쇄 2013.11/읽은 때 2025.6.21~6.26
이청준(1939~2008)향년69세/전남 장흥/서울대 독문과 졸업/1965년 사상계에 단편 <퇴원>으로 문단에 나옴/대표작 <당신들의 천국><인간인1984~1991><낮은 데로 임하소서><축제><서편제> <병신과 머저리>등이 있음/한양대,순천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동인문학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이상문학상등 수상/사후에 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 추서됨
**1985년부터1987년 봄 무렵까지 3년여에 걸쳐 발표한 중단편10편을 통해 작가는 5공화국(1981~1987)의 기묘한 담론 질서와 그 집권세력인 신군부체제는 물론이고 1985년 무렵의 끔찍한 모더니티 일반을 겨냥해 비판하고 있다.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하나의 서사 속에 중첩된 주인공의 시간과 작가의 시간을 동시에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김남혁 문학평론가
--차례--{이 안의 글은 이윤옥의 글}
<해변아리랑>
(얼마 전 다녀온 장흥 바닷가가 눈에 선하다. 좀더 여유가 있었더라면 이청준의 생가도 들르고 그와 관련된 장소들도 더 둘러볼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37)그는 생전에 늘 여기(고향 장흥 바닷가)와 앉아서 그의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그 노래가 끝났을 때 그의 혼백은 바다로 떠나갔다.바다로 가서 반짝이는 물비늘이 되고 작은 섬이 되고 돛배가 되었다. 그 돛배의 노래가 되고 바닷새가 되고 바람이 되었다. 그와 그의 노래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먼 세월의 강물 저쪽으로 잊혀져 사라지고 이 碑木마저 자취없이 스러져도이 땅에 뜨거운 해가 뜨고 지는 한 그의 넋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그가 이 땅에 노래로 살다간 사랑은 저 바다의 눈부신 물비늘로 반짝이며 먼 돛배의 소리들로 이어지며 작은 바닷새의 꿈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청준의 자전적 작품/삶의 부끄러움이 이런 글을 쓰게 했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작가는 <해변아리랑>의 끝부분을 거의 그대로 차용해 자신의 묘비명으로 삼았다.그런 점에서 이해조는 어느 정도 이청준이기도 하다.}
<벌레이야기 1985>
(1980년 11월13일 경서중힉교 1학년생이던 이윤상[1967년생]군이 자신을 가르치던 체육선생 주영형[1953년생]에게 유괴되어 살해된 사건이 소재)
(비슷한 문장 반복, 글의 긴박감이 없음,지루함/ 살인자 김도섭은 또 뭐냐? 피해자 가족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청해도 모자라는 판국에 ~)
(80)저는 지금이나 저 세상으로 가서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아이의 영혼을 저와 함께 주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시고 살아남아 고통받는 그 가족분들의 슬픔을 사랑으로 덜어주고 위로해 주십사고---
(가증스럽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제목의 벌레는 어디 있나?)
{사랑과 화해라는 정신적 덕목을 종교적 신성성에 빗대 다룬 소설/신의 이름을 빌려 행한 용서와 그 허위성을 보여준다.}
*영화 <밀양> 전도연 주연
*어떤자료에는 목사의 딸이 살해되고 그 아버지가 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야기로, 목사는 스스로를 벌레라 표현했다는데 여기서의 내용과 다름
<불의 여자1985>
'나'는 관음증 환자인가?
(비오는 날은 알몸 목욕을 즐기고 오랜 가뭄 끝에 그녀는 화재가 일어난 집 속에서 타 죽는다.)
<나들이하는 그림1982>
이중섭/밤에 읽는 童話風
<누군들 초장부터 꾼으로 태어나랴 1985>
(소 파동이 한창이던 비극적인 현실배경)
(109)자식농사의 비결:
이삭 모개 수만 많다고 풍년 농산가.자식농사는 꽁지수가 적더라도 다듬어 사람을 만들기 나름이었다.
남루한 시골구석에서 논뙈기 나부랭이나 들여다보고 녀석들을 품지 않고 일찌감치 대처로들 내보낸 결과였다. 동네사람들도 이제와서는 다들 부러워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보퉁 선견지명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돈이 좀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앞일을 내다보는 선견지명! 그게 없이는 안 되는 일이었다.그 위에 제 살을 베어 내던지는 아픔을 끝내 견뎌내야 하였다.*天不生無祿之人, 태어났으면 어디 가서도 굶어 죽으라는 법이 없었다.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믿어야 했다.
*하늘에 복록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아니하고 땅은 쓸모없는 초목을 기르지 아니한다*
(天不生 無祿之人 地不長 無名之草 ) ---전국시대 후기 철학자 筍子
"굶어 죽더라도 이 시골구석을 빠져나가 큰 바닥에서 뒈지거라!"
----대처로 나간 아이들은 역시 굶어죽지도 않았고, 거지가 되지도 않았다.
(남매는 서울에서 자리를 잡고 봉급을 꼬박꼬박 저축하고 부모님 용돈과 의복까지 사들고 찾아왔다.
동네에서 두 번째로 TV도 들여놓았다. 동네 사람들은 처음엔 빈정거리다가 다음엔 부러워하고 뒤엔시기심이 발동했다.)
(147~)남매의 서울살이 실상:
(길동이는 노조대표로 싸우다가 회사에서 짤리고, 길순이는 유부남을 사랑하여 임신까지 했으나 배신당하고 아이를 낙태시킨 채 만신창이가 된다.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귀농한 아이들은 어느 날 다시 서울로 간다.)
(152)---아부지, 엄니. 저희는 이제 이미 솔잎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저희도 갈잎 숲에서 갈잎송충이들과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떠나면서 녀석들이 마음으로부터 남기고 간 글귀였다.
<흰 철쭉1985>
(흰쩔쭉이 피는 집을 사서 살면서 그 철쭉의 임자를 만나 사연을 듣고 이산가족상봉을 바라는 주인 내외의 마음을 담았다.)
{남북이산가족찾기가 소재/새가 된 영혼/아픔과 기원에 대한 글}
<숨은 손가락 1985>
강유근 대장과 그의 13명 의용 유격대 대원들/정규부대 못지않게 전투력이 강인하고 가차없는 부대/정화사업 하러감/수복지역에 들어가 악질 부역자 한 녀석을 색출, 처단하여 마을을 완전히 제압하는 것/나동준이 길을 안내함/나동준을 상념에 빠지게 하는 건 마을에 남아 있는 백현우--
(214)현우의, 진심을 위장한 잔인한 복수극:
그 손가락질의 절망적인 고통과 치욕--치욕스러운 손가락질 대신 자신의 죽음을 선택해 버릴 수 있었다. 배반의 손가락질로 남을 죽이는 대신 자신의 죽음을 가리켜 버릴 수 있었다.그런 배짱으로 녀석은 지금 동준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있었다.
---동준은 從叔(아버지의 사촌형제)을 손가락질했고 그는 처형되었다.
그때부터 동준은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그리고 이 모든 것이 현우가 벌인 연극이라는 걸 깨닫고 이를 악물고 치를 떨었다.현우에 대한 복수심이 불타올랐다.
(240)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한 동준 앞에 나타난 현우:
그러나 사정은 동준이 그토록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다.현우를 모른 것이 애초부터 동준의 비극의 시발이었다.뿐더러 이날도 상대를 모르고 섣불리 자신을 과신하고 든 데서 동준은 그의 마지막 비극을 부르고 있었다.무엇보다도 그 현우가 용꼬리 부대로 동준을 찾아와 여유만만 그에게 내뱉고 갔던 말, 자네가 누굴 지목했든 안 했든 마을에선 오늘 어차피 한 사람이 고발될 것이네.그 한마디를 주의깊게 넣어두지 못한 것이 크나큰 불찰이었다.누구에 의한 고발이 될 것인지 말뜻을 새겨듣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동준도 어슴푸레 느껴온 일이지만,결과부터 말하자면 현우는 이날 전날의 동준의 탈출의 행운마저 그의 연출의 대미를 완성시키기 위한 시선 긴 복선으로 돌변시켜 버린 것이었다.
동준은 현우의 교묘한 계략에 말려들어 마을에 남겨진 채 자살한다.
(왜 줄거리가 머리에 안 들어오지?)
{배반과 복수에 대한 글}
<섬 1986>
오징어배에 40명이 타고 독도를 향해간다,풍랑이 만만치 않은 날씨에/홍순철과 20년간 홀섬을 찍은 사진작가 강형/둘은 호형호제하는 사이/울릉도 저동항에서 독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는 7시간--
(287-288)섬은 역시 환상이 아니었다.그것은 살아있는 현상의 실재였다.따뜻한 햇볕 속에 섬을 하얗게 뒤덮고 떠도는 수많은 갈매기떼, 걀걀걀----해풍과 파도소리에 뒤섞여 섬하늘을 끊임없이 맴도는 그 새들의 울음소리, 높고 가파른 암봉들의 융기와 그 싱싱한 경관들, 어느 것도 환상이 아닌 섬의 분명한 실재 형상들이었다.그 위에 무엇보다 나를 실감으로 감동케 한 것은 뱃머리에서 우리를 맞이해준 경비요원들의 존재였다.
이 섬에 실제로 사람이 살아있었다니.---사람이 실제로 살고 있음은 그 섬이 살아있음이었다.환상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나는 새삼스레 섬을 직접 찾아오길 잘했다고 마음 속으로 몇 번씩 다행스러워하였다.그러면서 이젠 그 암울스런 회색과 죽음의 환상 대신 밝고 선명한 섬의 모습들을 마음 속에 차곡차곡 간직해 나갔다.
{오징어배를 타고 독도(홀섬)를 여행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함 }
<흐르는 산>
<인간인>의 소품에 해당/남도섭과 무불 스님(시대적 배경:1945.8ㆍ15무렵)
속세에 고약한 緣을 짓고 山으로 들어온 두 사람--도섭은 무불스님이 24시간 눕는 시간 없이 밤에도 앉아서 자는 일에 궁금증을 느끼고 질문한다.
그러나 도섭은 끝내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다.
(308)하여 도섭은 이후부터도 그 두 가지 의문의 포로가 되어 지냈다.
--스님은 끝끝내 하루도 누운 잠을 안 주무실 것인가
--아픔의 산봉우리가 인연의 강물로 세상을 향해 흐를 날은 정말로 올 것인가. 그것은 정녕 언제쯤 어떻게?
(산에 숨어지내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일본의 적대적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해방이 되고서야 알았다. 스님이 하신 말씀에 대한 해답도 얻은 것 같다. 마인드가 비슷한 남도섭에 感情移入이 되어 재미있게읽었다.)
{정치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심지연心池硯 1987>
*사람의 마음을 씻고 가는 연못형국의 갈판(벼루)
(321)심지연에 담긴 서당 스승의 마음:
어른께선 실상 글씨를 외우고 쓰는 데보다 먹을 가는 일에 더 단속이 많으셨제----먹을 가는 일부터 잘 배워야 한다.글씨를 쓰는 일은 마음을 닦는 일이요, 먹을 가는 일이 그 시초인 까닭이다----네 먹은 마음의 棒柱요 벼루는 네 마음을 갈아담는 연못인 게다. 그래 이 벼루가 心池硯이다----바른 자세로 마음을 모두어 정성껏 먹을 갈아 벼루에 마음의 깊은 못을 파고 그것을 채워 나가기에 이르면 네 마음 닦음이 그만큼 크고 깊어짐인 것이다.--다시 仁義로 채워 나가기에 이르면 네 마음 닦음이 그만큼 크고 깊어짐인 것이다.
(값 나가리라 짐작되는 어릴 적 스승의 벼루를 가져가려다, 스승의 송덕비에 쓰인 글귀를 보는 순간, '나'는 그걸 도로 제자리에 가져다놓았다.)
(323)---지혜처럼 짊어지기 어려운 짐이 없지만, 그래도 그걸 짊어져야 비로소 하늘을 우러러 두 발로 걷는 사람인 것이, 그 무게가 바로 제 사람됨의 값인 때문이다---송덕비 글
작품해설--끔찍한 모더니티(325~365)
(329)징후의 문학을 옹호하는 이청준의 문학:
징후의 문학은 작품에 중첩되어 있는 실제 사건의 시간과 작품이 씌어지거나 발표된 당대의 시간을 두루 살펴볼 때 적절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333)(당선된 지 얼마 안 된 전두환은 경찰서를 찾아가 정의와 안전을 강조하고 피해자 이윤상 집으로 찾아가 위로의 말과 인삼 두 박스를 건냈다.그후 전두환의 만행을 고려할 때 그야말로 '끔찍한 모더니티(現代性)' 그 자체였을 것이다.)
(345)<벌레이야기>는 가해자에 대한 단순한 비판과 증오를 거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용서를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으로 성급히 제시하지 않는다. 증오도 용서도 불가능한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은 85년 무렵의 상황에서 이청준은 <벌레이야기>를 썼다.
(352)알레고리적 기법:
*알레고리:추상적인 개념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것과 유사한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문학 형식.(寓話도 그 하나)
(354)경남 고성 두암마을의 시위;
'농민은 선진조국의 머슴인가' '소값 똥값 소값 개값'이라는 피켓을 들고 자기가 키운 소를 몰고 30리를 길을 걸으며 시위했으나 언론은 일언반구 다루지 않았다./허풍과 땡고집만 부리는 '믿을 수 없는 화자' 공만석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현실
(357)이처럼 이청준은 공만석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누군들 초장부터 꾼으로 태어나랴>를 현실과 가장 무관한 이야기처럼 은폐하면서도 가장 첨예한 문제에 시급히 개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로 이 소설은 그가 강조한 '徵候의 문학'의 중요한 사례이다.
(360)<나들이하는 그림>에 이르러 이청준은 장르적 미학적 규칙과 완성도에 집착하지 않는다. 죽은 자들을 위로하고 산 자들을 살게 하는 글쓰기라면 그것이 *에스키스든 동화든 소설이든 상관없다. 왜냐하면 1985년 지금은 비판도 용서도 모두 불가능한 끔찍한 모더니티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에스키스esquisse--시험삼아 그리거나 만드는 작품의 밑그림
(363)<불의 여자>의 화자는 말한다. "내게는 아무것도 그녀를 위해 해 줄 일이 없었다"
이 작품에서 이러한 화자를 80년 광주의 비극을 알고 있지만 상처 받은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며 자기합리화하는 인물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364)<섬>과 <해변아리랑>은 일견 서정적인 서사로 보이지만 바로 진짜싸움의 한 방법을 알려주는 소설이다.
(365)<해변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은 드디어 끔찍한 모더니티의 그물망을 벗어나는 자유로운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이번 전집의 첫머리에 실린 이 소설은 끔찍한 모더니티를 벗어나고 싶었던 이청준의 갈망을 보여주는 듯하다.
(365)이청준을 흠모하는 까닭:
감히 말하건대 나는 뭇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이청준이 합리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끔찍이 두려운 홀섬에 반복해서 다가서려던 강형과 홍순철처럼 狂人이었기 때문이다.
(이 해설을 거치지 않았더라면 수박 겉핥기에 그쳤을 것이다. 해설을 읽고도 아리송한 부분이 많았는데--그래서 이청준의소설은 또 읽지는 말아야지 했는데--왜 작품 해설이 40여 페이지에 이르렀는지 이해가 간다.)
*자료(366~392)이윤옥 문학평론가
('작품 해설' 못지않게 흥미롭고 미리 읽으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두 분 평론가의 글을 읽고 평론가의 길도 결코 녹록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깨알연구'라니! 작가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한 발 디려놓기도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