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
이 두 권이 이번 3박4일 여행의 밑그림이다.
첫날, 봉고차에 6인이 탑승, 하하 깔깔 웃는 가운데 6시간 만에 땅 끝에 도착, 짙푸른 바다 앞에 섰다. 땅에서는 지열이 후끈거려도 바다를 건너오는 바람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해거름에 대흥사 경내에 있는 고즈넉한 기와집 유선여관에 당도, 찬물로 목욕하고 초가을같이 서늘한 밤을 보냈다.
해남읍 읍내리 떡갈비가 유명한 식당
미황사 눈도장만 찍고 나오는 길에
착한이웃, 팽양공네
남도기행 일 번지,두륜산 대흥사 해탈문 앞
아휴, 힘들다~
관산청천:산을 바라보며 흐르는 물소리를 듣다
유선여관의 마스코트, 진돗개
이튿날, 통영을 향해 가면서 고산 윤선도 고택 녹우당과 기념관에 들러 ‘오우가’와 ‘산중신곡’ ‘어부사시사’를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들고 한 수씩 읊었다. 정이네 팽씨, 자네 공씨, 식이네 양씨 모두 시 한두 편씩은 너끈히 외더라.
통영 부두에는 눈도장만 찍고 한려수도의 끝 섬 욕지도로 들어갔다. 타국의 산과 바다를 만만찮게 돌아다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역시 우리 땅 우리 바다가 최고야!
통영항에서 출발하는 욕지도행 배
욕지항을 바라보며
가파른 언덕배기에 자리한 몽돌개 섬마을 민박에 짐을 푸니 벌써 일몰의 시각-
부랴부랴 와인과 안주를 챙겨들고 이번 여행의 길잡이 팽씨 아저씨가 이끄는 대로 방파제에 앉으니 해는 벌써 하늘을 금빛으로 물들이며 바다 속으로 잠수하고 있었다
몽돌개에서 바라본 일몰
3일째-
모기향을 방마다 피웠건만 웬 알 수 없는 벌거지 등쌀에 긁적긁적 사방이 벌겋게 물린 데 투성이-그러나 아침부터 아낙들은 밥 짓고 남정네는 생선 사러 어시장에 가고 식사 후 곧바로 해안으로 내려갔다. 워낙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서인지 피서객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아 민박집 앞바다를 전세 내서 한나절 낚시 드리고 고무보트 타고 파도 타고 --짠물에 온몸구석구석을 절이고 소독했다.
저녁거리는 싸가지고 욕지도에서 가장 전망 좋은 새천년공원에 가 펼쳐놓고 덩실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밥 한 술, 술 한 잔, 시 한 수로 서울에서 아득히 먼 섬 욕지도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식후 달밤 체조를 하고 있노라니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 옆자리로 모여들었다.
새천년공원에서 유치환의 시를 읽다
우리는 새천년공원에서도 일몰을 보았다
4일째-
아쉬움을 안고 욕지도를 떠나기 전 ‘돌아가는 배’의 저자, 전 한국일보 편집국장 김성우의 기념관을 찾았다.
항구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세운 돌아가는 배 기념관- 햇살은 따갑고 철문은 굳게 잠겨 있어, 오기 전까지 설레던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집이 아니라 도시로 나아가 꿈을 이룬 저자가 자기 만족에 지은 집일뿐이구나!
김성우 문학관 '돌아가는 배' 앞에서 맥이 쭉 빠져
안녕, 욕지도~
욕지도항에 있는 열녀비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한 광고지요?
통영으로 들어와 역시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유치환문학관에 들러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고인을 회상했다.
평생 한 여인을 가슴에 품고 시심에 젖어 살다 간 소년같은 유치환-통영이 낳은 못 말리는 로맨티스트였나보다.
유치환 문학관
유치환 생가
이 사람 저 사람 하고 여행을 많이 해봤지만 이번 여행은 참으로 편안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여행이었다. 서로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들이 남 달랐다. 그러면서도 별 스스럼없고 꼭 세 자매와 그의 남편들이 함께한 여행 같았다.
이번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고 우리를 쾌적하게 만들어준 팽대령님께 우선 감사하고, 세세한 데까지 신경 써서 식단표를 잘 짜, 우리의 뱃속을 즐겁게 채워준 정이에게 고맙고, 몸이 좀 힘들어도 내색 않고 분위기를 잘 이끌어준 우리의 큰오빠 같은 공박사님께 또 감사하고, 낭랑하고 맑은 웃음소리로 우리들 마음을 밝게 해 준 자에게도 고맙고, 이 일 저 일에 기동력 있게 움직이고 무척 힘들었을 텐데도 뒷자리를 고수한 우리 영감한테도 고맙고--
이런 좋은 벗님들과 십 년 이십 년 서로 의지하며 정을 나누고 틈틈히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행복한지---
2006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