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감사일기 22

스물두 살 선이에게

(칠십다섯에 스물두 살 선이의 일기장을 펴보았다.) 네가 지금 옆에 있다면 호통을 쳐주고 싶다. "정신차려, 이 사람아!" 네 부모는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되서 널 애탄지탄 어렵사리 대학까지 보내,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버젓한 직장까지 얻었는데, 어째서 주눅들고 무기력하고 삶의 무의미 하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나 하고 자빠졌능겨, 시방! 키가 작고 외모가 볼품없는 걸 비관한다고 달라지남? 그런 일에 에너지 소비할 시간이 있거들랑, 수업준비나 철저히 하고 짬날 때 영어공부나 열심히 해서 실력을 쌓았어야지~~글구 연애가 하고 싶으면 외모에 신경 쓸 게 아니라 안에서 풍기는 매력으로 승부를 냈어야지! 내가볼 땐 완죤 찌질이다. 그럼에도 포항에서의 일 년은 네 교사생활 내내 활력소가 되었고 그때 만..

꽃을 든 남자--벗을 떠나보내며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두려워 나는 가노란 말도 못다 이르고 갔는가 카톡방에 미처 들어오기 전 친구의 전화로 訃音을 들었을 때 울컥 울음이 솟았습니다. 아, 우리에게도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는 때가 드디어 왔군요. 모임이 있는 자리마다 꽃을 들고 나타나 우리 여친들에게 쑥스러운 소년의 미소와 함께 꽃을 건네주던 벗이 생각납니다. 몇 해 전 몰타에서 돌아왔을 때, 외국물 마셨으니 영어실력이 얼마나 늘었나 보자며 미8군 영내로 불러 만찬을 베풀어 주었을 때 얼마나 고맙고 감동적이었던지요? 어찌 제게만 그런 섬세한 호의를 베풀었겠습니까? 가는 자리마다 꽃자리로 만드는 재주가 있어 주변을 밝혀 주던 벗이여! 이제 어느 자리에서 그 짱짱한 음성과 웃음소리 들을 수 있겠는지요? 어둠이 깃든 숲 속에서 가족의..

칠십다섯 노인이 열다섯 소녀에게

나이 칠십다섯이 되어 60년 전 열다섯 너를 들여다보았다. 6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딱딱한 빨간표지 안에 단정한 글씨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300일 남짓한 기간의 일기들 속에서--- 왜 그리 자주 아팠니? 아파서 결석한 일도 있고, 코로 입으로 피를 쏟은 적도 있다는 말에 새삼 무척 놀랐다. 병윈치료도 제대로 못 받아 병명도 모른 채 늘 골골거리며 힘들었을 너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리다. 잠을 이기지 못한 것도 다 건강이 시원치 않아서 그랬나 보다. 지각은 또 왜 그리 자주 했니? 하기사 그 버릇을 이내 못 고치고 직장 다닐 때도 지각하는 버릇 때문에 이미지가 손상되곤 했지.네 모습 가운데 제일 맘에 안 드는 게 바로 그거다. 부지런한 네 어머니는 네가 지각쟁이라는 걸 모르고 계셨나 보다. 지금 살아계셨다..

보수공사 두 건

어제 오늘, 두 건의 보수공사가 있었어. 큰 거는 아니었지만 심적으로 무척 부담스러웠던 거라 해결하고 나니 날아갈 것 같구먼.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네. 한 건은 치과 치료인데, 몇 년 전 임플란트한 이와 그 옆에 씌운 이 사이에 공간이 생겨 매번 음식물이 껴서 왕 짜증이 났어. 몇 년을 참고 지내다가 이번에 칫과엘 갔더니 염증이 심하다며 우선 염증 치료부터 받으라 해서 네 번씩이나 갔지. 어제 비로소 땜질해도 되겠다고 하데. 그런데 왜 입만 벌리고 있으면 심장이 쫄깃해지면서 숨이 막혀 자꾸 목구멍으로 숨을 쉬게 되는지 몰라. 콧구멍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데도 말이야. 힘들어 껄떡대는 걸 잘 아시는 선생님은, 아이 달래듯 쪼금만 참으라고, 아픈 건 없다고 하시며 치료를 마치셨어. 이번에 때운 건 ..

행복하고 보람있는 하루를~

2023년 6월 24일 **느티회 친구들에게** 어제는 모처럼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고 즐거웠어. 생각해 보니, 우리 나이에 만나면 맨 아프단 얘기, 건강관리 얘기, 누가 병상에 있다는 얘기 들이 화젯거리였었는데, 어제는 우리들이 얼마나 열심히 활기차고 의욕적으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아직도 美貌(젊은애들이 보면 웃겠지만)와 왕년의 퀸의 자리를 확인하고 행복했는지 등의 이야기가 살짝 샘(샘과 질투는 늙지않는다!)이 나면서도 즐거웠어. 더구나 건강을 회복하고 하루에 만보걷기를 하는 혜*부부, 오십 바라보는 나이에 유학을 떠나는 자식을 위해 최고의 요리를 마련하는 *숙이, 하느님의 집에서 행복을 나누어주고 아름답게 봉사하는 재*이의 얘기들은 우리들의 미래를 밝게 해주었어. 나도 집에 돌아와 보니..

마눌과 영감과 큰아들

2023년 5월24일 수 역마살 낀 마눌은 단짝 친구들캉 성북구 구립미술관, 길상사, 쌍다리 불백집으로 돌아다니는 중인데, 영감은 '자연의 철학자'가 되어 흙과 봉숭아와 깻잎과 메리골드 모종과 노느라, 저녁 먹으러 나오라고 카톡 문자 보내고 전화를 열두 번을 해도 받지 않는다. 그래도 좋다. 오늘 울 큰아덜이 토익 855점을 받았으니까. 그래서 저녁밥값도 내가 쏘았다. 아들, 축하해, 수고했다. 더구나 두 아이 돌보면서 짬짬히 공부해서 이뤄낸 성과니 말이야~ 너의 미래를 응원한다. 다음 단계도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손디자이너의 작품발표회

2023년 3월 25일 토 혜화동뜰에서 손디자이너의 미니 패션쇼가 열렸다. 마른체형의 장여사와 허리가 굵고 자그마한 써니에게 어찌 그리도 딱 맞은 옷을 만들었는지~ 40여 년 노하우가 그대로 발휘된 멋진 의상이다. 흡족해하는 두 노부인을 보고 디자이너 손은 흡족한 미소를 날렸다. 우정이 샘솟는 따뜻한 봄날이다.디자이너 손양 셰프는 이들 세 사람을 위해 맛있는 칼국수 요리를 만들었다. 모두 대만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