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나무 이야기 122

폭설

폭설--오탁번 삼동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남도 땅끝 외진 동네에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눈이 좆나게 내려부렀당께!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 내렸다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워메, 지랄나부렀소잉!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온 천지가 흰눈으로 뒤덮여 있었다하느님이 행성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축사 지붕도..

떠난 친구를 그리며

지난 달말 설밑에,  인사도 없이 홀연히  떠난 친구가 문득 떠오릅니다. "나 이제 내뜻 대로 한번 신나게 살아 볼 거야, 너희들이랑 여행도 실컷다니고~"그런데 어느날 어지럼증으로 쓰러진 후 병원을 드나들기 3년여~~영안실 입구에서 사진으로 만난 그녀는 묻는 듯했습니다.'이거 뭐야? 왜 내가 여기 걸려 있는데? '그날 밤부터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고 폭설이 내렸습니다. 원통해서 떠나기 싫어하는 그녀의 울부짖음 같았습니다.                                                                                동백 피는 날--도종환

이름 모를 꽃

여행길에 절간 마당이나 담장이 낮은 시골집 장독 가에 또는 앞마당 화단에서 많이보던 꽃이었습니다.그런데 작년 여름 우리 동네 골목길 입구에서 이 꽃을 만났습니다.오가는 사람들 보라고 동회에서 설치해놓은 건지 앞집 가게 주인이 건사하는 건지 모르는 커다란 돌 화분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보시시 아슴하게 골목 입구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에 반해 한참동안 서서 바라보았습니다.그리고 욕심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뿌리 캐다가 집안에 들여 놀까?그러다가 그만 바쁜 생활 속에 흐지부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그런데 올여름 다시 이 꽃이 생각나 그 자리를 눈여겨보았습니다.누구의 손길이 닿았는지 작년 보던 그 꽃은 온데 간데 없고 엉뚱한 꽃이 그 자리에 피어나고 있었습니다.낭패감으로 발길을 멈추고 맥없이 서서..

뜰에 찾아온 해바라기

씨앗을 뿌린 적도, 심은 적도 없는데 요상한 놈이 뜰에 뿌리를 내렸다. 십중팔구 잡초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줄기를 키우고 잎새를 내는 모양이 범상치 않아 기다려 보았다. 키가 1m쯤 크더니 드디어 노란 꽃잎을 낸다. 틀림없는 해바라기다. 불꽃같은 이파리가 둥근 모양을 만들더니 그 안에 가지런히 접혀있던 꽃잎이 하나하나 일어서면서 해바라기가 완성된다참나리 키는 2m가 넘는데 해바라기는 겨우 1m 정도~ 참나리는 해바라기의 보디가드. 내 의도와 상관없이 해바라기도 키우고, 딱새 집도 지어주신다, 가없이 크고 깊으신 그분은~~ 이파리는 거의 절반을 벌레에 내주고도 잘만 큰다 비를 맞으면서 완전 개화정체 모를 벌레가 꽃잎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