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실/제자들의 편지모음

국어선생님께

맑은 바람 2023. 9. 24. 22:42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11반 박세윤입니다.

 

그동안 죄송스러웠습니다.

선생님께선 매명(每名)하에 정성으로 가르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또 초라니 줄방울 던지는 듯한 저를 풍류(風流)꾼으로 만드시고

조박(糟粕)이 없는 저를 지식이 많은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게다가 저희에게 피와 살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버릇없던 것은,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면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갔던 상주 제청(祭廳)에 달려들 듯 급식 먹으러 간 것,

나랏님 거동과 같은 선생님이 교실에 오실 때 수업준비가 안 된 것 또 수업시간에 딴짓한 것 들입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선 교직원 식당에서 밥맛이 없어 생쌀 내가 나고,

좋아하시는 장이 나와도 날 장내가 나고, 목이 말라 물을 드셔도 해감내가 나고,

샐러드를 먹어도 풋내가 나십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우리를 하해(河海) 같은 아량으로 용서하셨으니 천복(天福)을 받아 무병장수하실 것입니다.

만수무강을 빌며 그럼 이만 안녕히 계십시오.

(2003년 12월 26일)

 

***처음엔 어리둥절하였다가 웃음이 터졌다.

오십 넘은 우리들도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을 구구절절이, 적재적소에 골라 쓴 아이에게 감탄했다.

 

이 학생은 평소 전혀 두드러진 데가 없고 아주 평범한 아이로 보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책을 펴 놓고 이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위의 識字가 들어간 부분은, 중학교 2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중, 설화 ‘바리데기 바리데기 바리공주야’와 판소리 ‘흥보가’에서 인용한 것들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잠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