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할매-- 황석영

맑은 바람 2026. 4. 10. 12:55

황석영 장편소설/창비/224쪽/초판1쇄2025.12/초판11쇄2026.1/읽은 때 2026.4.7~4.9

황석영(1943~ )만주 장춘 출생/동국대 철학과 졸업/고교재학 때 단편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수상/1970년 단편 <탑>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1989년 베트남전쟁을 다룬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 수상/2000년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이산문학상 수상/2001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 수상/<해질 무렵>으로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수상/2024년 <철도원 삼대>가 인터네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름

(219)군산에 삼백 년 된 포구마을 '하제'가 있고 그마을 제일 안쪽 구석에 600년 묵은 서낭목 팽나무가 있었다. 이를 지키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팽나무제를 지냈고 드디어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및 문화재로 지정됐다. 작가는 그 나무를 지키고자 군산으로 이사를 왔다.
4년만에 작품이 완성되었다--작가의 말

하제마을의 600년 된 팽나무 실물

1.
(7)첫단락 .: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동쪽하늘 멀리 흰 눈을 덮어쓴 산맥이 연이었고 그 아래로 높고 낮은 산과 언덕이 물결치듯 내려오다가 그치고, 키 작은 관목 숲이 우거진 들판이 나오면서 드넓은 습지 가운데로 강이 나타났다.어디쯤에서 시작하는지 알 수 없는 긴 강은 구불대며 서쪽에서 동북쪽 바다를 향하여 흘러갔다

개똥지빠귀

(19)개똥지빠귀들은 하루에 천리를 날아갔다.그들은 사흘만에 훨씬 따뜻하고 아직도 먹이가 풍족한 고장에 이르렀다.닷새가 지나자 개똥지빠귀 무리는 아무르 강변에서 곧장 남으로 내려와 조선반도를 비스듬하게 횡단하여 서해안에 도착했다. 새들은 오른편에 바다를 끼고 반도의 남쪽으로 곧장 내려갔다.

(30)(흰점박이 개똥지빠귀는 황조롱이에게 상처를 입고 죽는다. 죽은 새는 겨우내 눈(雪)밑에서 썩어갔다.)
개똥지빠귀의 뱃속에 팽나무 열매 몇 개가 있었다.열매의 거죽은 새의 시신과 함께 곧 사라졌지만, 딱딱한 굳은 씨앗은 부드러운 모래흙속으로 들어가 스며드는 물기와 더불어 차츰 땅속으로 묻혔다./굳고 딱딱한 씨앗은 한해를 보내고 겨울을 맞으면서 움이 틀 준비를 하고 있었다./싹이 트고 실같은 뿌리가 생겼다.싹은 부드러운 모래흙을 밀고 지상으로 푸른 움을 드러냈고 뿌리는 땅 밑 사방으로 살금살금 퍼져갔다.개똥지빠귀의 분해된 몸이 녹아들어 기름진 땅속으로 뿌리가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나갔고,어린 팽나무 싹은 여름이 되자 묘목이 되어 몇 개의 가냘픈 가지와 잎사귀가 돋아나와 바람에 팔랑대고 있었다.

2.
팽나무는 겨우내 봄의 꿈을 꾸며 잠들었다.그러한 겨울이 백 번 지나가고 다시 백 번쯤 지나 나무의 속내에는 이백 개 넘는 나이테가 겹겹으로 쌓였다.

3.
(보경사 주지 광덕스님에게 맡겨진 다섯 살 사내아이는 자라서 몽각이란 법명을 얻었으나 불공을 드리러온 강릉부사의 딸에게 마음을 빼앗겨 둘은 몰래 달아나 가진 것이 없는 채로 갖은 고생을 하다가 끝내 헤어진다.몽각이 서쪽을 향해 가다가 당도한 곳이 바로 군산포진에서 가까운 은적사라는 절이었다. )

군산 은적사

(73)몽각은 객승으로 은적사에 머물게 되었다./일년 반 더부살이 끝에 절을 떠나 새로운 주거지로 찾아든 곳이 우람한 팽나무가 서 있는 섬이었다.그곳에 움막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으나 몽각은 이미 수도승이 아니었다.

(82)몽각은 섬에 들어온 지 십 년이 지나서야 수도자로 다시 돌아왔다./다시 십 년이 세 번쯤 지나가자 그의 몸은 노쇠했다.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허리는 굽었으며 팔다리는 앙상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오후에 몽각은 가슴 통증으로 쓰러졌다.
(83-84)몽각의 열반:
몽각은 자기 몸이 곧 무너지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한 차례 통증이 지나간 뒤에 비틀거리며 일어나 팽나무에게로 갔다.
'나보다 먼저 있고 나중에 없어질 할매여,이제 내가 먼저 없어지네.'
그는 한때 그가 부지런히 잡아서 먹고 몸의 일부분이 되었던 것들에게 자신을 보시하고자 했다.그래서 비틀거리며 갯벌로 나온 길이었다.
그는 갯벌과 아득하게 멀리 밀려나간 바닷물의 중간쯤 자리를 잡고 앉았다.바닷바람이 부드럽게 그의 머리털을 날리고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먼곳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았다.해가 차츰 수평선 쪽으로 떨어져 저녁노을이 온 하늘에 붉게 번져가기 시작했다.몽각은 그의 이름처럼 꿈에서 깨어나서 꿈으로 다시 돌아갔다.그는 잠들었고 달이 떴다.깊은 밤이 되어 바닷물이 조용히 밀려들어 왔고 그의 몸은 물에 잠겼다.아마도 파도가 그를 조금 더 육지쪽으로 밀어냈을 것이며 달이 지고 다시 새벽의 썰물이 나가자 부근의 작은 모래 구멍에서 기어나온 칠게들이 그의 주검에 몰려들었다.칠게의 떼가 그를 덮어버렸다.바다는 다시 밀물과 썰물을 반복했다.
(몽각스님의 최후는 박찬욱 감독 영화 <헤어질 결심>의 서래의 모습과 완전히 오버랩된다.)

 

4.
도요물떼새:

(86--)금강,만경강,동진강이 곡창지대 가운데로 흘러 서해안의 서로 가까운 지역에 드넖은 하구와 갯벌을 이루어 온갖 해산물의 낙원이 되었다./수만 마리의 새들도 제각기 좋아하는 먹이를 찾아 무리를 지어 날아다녔다./아무르강 하구는 드넖은 초원과 샛강과 습지가 끝없이 펼쳐졌고 먹을 것이 풍족하여 철새들이 번식하러 찾아오는 곳이었다./도요새 어미는 이십여일 알을 품고 있다가 알에서 깨어나자 멀리 날아가 버린다.혼자 남은 수컷도 보름동안 새끼들에게 먹이를 잡아다 먹인 후 마저 떠나버린다/그들 부모는 아무르 강 하구로 돌아간 것이다./도요새처럼 먼바다를 건너고 대륙을 넘는 철새들은 날아가면서 아주 잠깐씩 얕은 가수면 상태가 되었다.한 방향을 잡아 몇 시간이고 직선으로 바람을 타고 날면서 새들은 졸았다.그러나 날아가는 동작이 흐트러지거나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다.반쯤은 깨어 있기 때문이었다./마도요 무리는 곧 만경강과 금강 하구에 이르렀고 갯벌에 내려앉기 시작했다./마도요들은 몽각의 해체된 유기물로 포식한 칠게로 굶주린 배를 실컷 채웠다./첫째 도요가 알을 셋 낳고  열 살이 넘은 어느 해 팔월, *수라갯벌에 도착했을 때 북상하는 태풍을 만나  갯펄에 내동댕이쳐져 깃털과 연약한 몸은 사라지고 앙상하게 삭은 머리와 갈비뼈가 마른 나뭇가지처럼 물살에 헤적이고 있었다.부드러운 모래땅을 비집고 올라온 생합들이 껍질을 조금씩 벌리고 흔적을 남기며 돌아다녔다.
(大家, 巨木 등의 대명사가 붙은 작가 황석영 선생의 글은 좀더 여유있고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읽으면 참 아름답고 짜릿할 것이다. 겨울밤에 다시 읽기로 하고 여기서 필사를 멈춘다.)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