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글벗회의 어느 날

맑은 바람 2009. 5. 9. 16:41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        -삶/고은

2006년 송년모임을 지난 12월 18일 명륜동 ‘시와시학사’에서 가졌다.
애초에 오기로 한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레 쏟아붓는 눈발과 추위로 취소되어
12명만이 오붓하게 한자리했다.

그날의 화두는 ‘행복은 어디에?’였다.
때가 되면 하나둘 떨어져 내리는 잎새처럼, 아침저녁 나갔다 들어오는 밀물과 썰물처럼,
가진 것 없고 아는 것 없어도 담담히 살아가는 가운데 행복은 찾아온다는 얘기--

식사 후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하려는 즈음 친구의 부음이 전해졌다.
갑작스런 소식에 충격을 받은 친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영구는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각별히 가까웠던 김교수도 고개를 떨어뜨린 채 말을 잃었다.

이틀 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돌아 나오던 일이 어제인 듯 눈에 선하다.
참담한 모습으로 누워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으나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아
힘들어하더니--시화회 송년 모임은 그렇게 침울하게 끝났다.

아홉수 치르고 이제 다시 한 살이 되었으니
올해는 제발 아프지 말고 신나게들 살기야요.
시화회 회장님에게서도 하루속히
이제 다 나았다는 소식이 왔으면 좋겠다.

 

2007. 1. 8

까치밥이 아직 주렁주렁한 시학사(만해학술원)
글벗회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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