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산문/작가정신/257쪽/초판2001.10/개정판 1쇄 2018.9/읽은 때 2025.11.20~11.23
차례
1 말의 강, 글의 강
(21)生得한 언어와 학습한 언어:
술자리에서는 생득한 언어(고향 경상도 말)로 청산유수를 펼치는데,공중파를 타는 방송에서는 학습한 언어(표준어)를 써야했으므로 고충이 컸다. 그래서 작가는 '현재 서울의 중류사회 사람들'(표준어의 원칙)을 부러워한다고 했다.
(22)'잘못 쓰는 우리말'로 지적당한 작가의 말들:
1새비릿하다--너무 어려서 비린내가 나는 데도, 말하자면 배릿한데도 어쩐지 싫지 않은
2잣아서--'스스로 원인을 제공해서'의 전라도방언
3뒤짐질--뒤지다(수색하다)의 명사형
4을박다--매우 퉁명스런 어조로 공격하다(보통 아랫사람이 버르장머리 없이 윗사람한테 말하는 태도)
5묵근하다-- '묵직하다'보다 더 묵직한(경상ㆍ전라도 방언)
6속닥하다--단촐하고 호젓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경북지방 말
(표준어를 고집하는 어느 덜 떨어진 작가를 나도 경멸한다.<태백산맥> <토지> 등에서 지방말의 감칠맛을 느껴본 적이 없던가, 그분은? 方言이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걸 그는 왜 인정하지 않는 걸까? 사전에 없는 새로운 말 지방말의 自由自在한 구사를 할 수 있는 이들이 作家가 아닌가?그들로 해서 우리말이 더욱 풍성해진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국어사전은 그래서 최소 50년에 한 번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방언이 점차 사라지는 걸 안타까워하는 사람의 하나로 나는 이윤기 작가를 적극 지지한다.)
(30)문학(소설)에 대한 정의:
*소설이란 개념화되기 어려운 삶의 국면을 재현하는 언어구조물이다--이남호
*문학이란 解讀이 안 되는 것에다,남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빛을 부여하는 행위다--이청준
*문학이란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다 이름을 지어 붙이는 행위다--이윤기
2 풍속의 강, 세월의 강
(56)Be more, Seem Iess:
'되기는 큰 것이 되어도 보이기는 그보다 더 작게 보여라'
고백하거니와 가진 것 이상으로 드러나기를 바라면서 살아온 나의 삶은 참으로고단했다.그 신산스럽던 내 삶에서 이제 겨우 이 한 구절을 건져올렸다.
(64)내가 기도하지 않는 까닭:
인간이 신의 제단 앞에 자기가 가진 것 이상의 물건을 제물로 바칠 수는 없듯이 인간의 한 모듬살이가 섬기는 신은 그 인간들보다 훨씬 더 영리할 수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전능한 신은 없다고 나는 믿거니와, 설사 전능한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사로운 기도를 가납할만큼 유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그래서 나는 기도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75)조용필 음악과의 만남:
1976년--명륜다방--돌아와요,부산항--무지개를 본 듯,한 歌人을 발견했다. 물론 그녀와의 설레는 데이트가 있었기 때문이었겠지만.
(80)조용필은 모든 창조적인 인간, 모든 '불량인간'의 희망이다.
조용필은 '조용필과 그림자 '시대를 거쳐 '조용필과 위대한탄생'의 시대를 성취시킨 문화 영웅이다. 내가 그를 문화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기나긴 모색과 탐색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그의 음악이 이제 하나의 정형을 빚어내었기 때문이다.정치 영웅은 시대가 만들지만 문화 영웅은 시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만든다.우리는 지금 '불량인간' 조용필이 고통으로 빚어낸 시대를 살면서 그의 절대고독이 고통스럽게 일군 시대를 향수하고 있다.그런데도 우리는 조용필이 더 고독해지기를 바란다.우리는이 고독한 문화 영웅의 순교를 기다리고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116~)고향 이야기:
군위군 우보면 두북동/우보초등학교/내 애인처럼 여겨지던 이정필/조모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이정필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너도 우리 집에 가봐야 한다고 우겼던 것을 보면 얼뜨기였던 모양이다./독서광이던 조모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그 책들을 물려받고 장서 수를 늘려갔다.
(이윤기 작가의 문학성은 조모와 어머니에게서 온 것 같다.어머니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그 책들을 통째로 외웠다니! 아무나 그럴 수 있나?)
(120)고향살이:
형들과 누나들이 대구로 떠나고 2년 연상의 형과 어머니와 나 이렇게 셋이서 농사 일을 꾸리던 시절이 내 고통스럽던 고향살이의 절정을 이룬다./형에게는 참 따뜻한 버릇이 있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자르기 전에 먼저 톱 등으로 나무를 툭툭 건드리면서,
"나무요 나무요 톱 들어가니더."
하고 중얼거리던 버릇이 그것이다.
"求處 없어서 베기는 한다만 백 살넘는 나무 욕보일 수는 없지."
(123)고향의 의미:
어머니가 그렇듯이 고향은 내 삶 한가운데 부동자세로 서있는 중심이다.나에게 고향은, 삶이 국면 전환을 맞을 때마다 되돌아가서 한번 서 보는 부동의 중심, 변하는 세상의, 변하지 않는 靜寂의 중심이다. 고향의 정적은 역동성의 잔해가 아닌 역동성의 震央이다. 내가 오랜 몸풀기와 폐경기를 보내고 나른하게 쉬고 있는 불모의 둥지 어머니 묻힌 고향 선산을 세계의 중심,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127)영어에 대한 병적인 우월감:
당시까지 내가 영어로 읽은 책은 마이클(평화봉사단)이 영어로 읽은 책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그는 나에게, 너는 아무래도 영어를 껴안고 한평생을 살아갈 것 같다고 예언자처럼 말했다.
(지방에서 활동한 평화봉사단들은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에게 영어와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
(137)훈장같은 굳은살:
제대후 1973년부터 15년간 나는 15만 장 가까운 200자 원고지를 글로 메웠던 것 같다. 1988년 무렵까지 내 오른손의 가운뎃손가락 첫마디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우리들에게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의 굳은살은 훈장과 같은 것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전후해서 필기구를 워드프로세서로 바꾸었다.굳은살이여, 안녕
3 신화의 강, 문학의 강
(185)이윤기가 위대한 이유(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
학원사 발행 <세계명작소설전집>100권과 <세계위인전집>100권을 한 권도 빠뜨리지 않고 읽고 또 읽었다는 점/모든 문학은 自傳이거나 他傳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87~)<플루타르코스 영웅 열전>에 대하여:
플루타르코스는 그리스도보다 약 반 세기 뒤에 태어난 그리스 역사가다./50꼭지에 이르는 그리스ㆍ로마 영웅 이야기를 담고 있다./성서와 더불어 서양 여러 언어의 어휘와 수사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책/나폴레옹과 베토벤에게는 이 책이 성서와 다름없었다/에라스무스에게는 성서에 버금가게하는 신성한 책이었다./에머슨에게는 세계의 모든 도서관에 불이 날 경우 목숨 걸고 들어가서 꺼내고 싶은 책 세 가지 중 하나다.
(189)他傳이 전설이라면 自傳은 진실이다./내가 허구보다는 전기, 전기 중에서도 타전보다는 자전을 더 좋아하는 것은 한 인간이나 사건 자체의 주관적인 의미 체계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100%공감! !)
(192)'지금, 여기'에 있는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 젊은 날의 성서였습니다.--조선일보 최구식 기자의 말/*조르바는 실존인물로 그에게는 예순이 넘은 딸이 있다.
(206)카잔차키스가 말하는 조르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정열의 의미를 전해주는 껄렁한 노동자"였다.
(221~)話者가 삶을 思惟하고 考究할 동안 조르바는 '지금, 여기'를 평상심으로 산다./조르바는 나날이 삶에다 처녀성을 부여하는 자다. 예순 살을 훌쩍 넘겼지만 조르바는 날마다 새 세상을 산다./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모든 순간순간을 처음 대하듯이 신비로워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저 조르바에게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랴!)
(230)사업이 거덜난 후에 바닷가에서 춤을 추는 조르바를 보며 카잔차키스는 말했다.
"보라, 조르바는 사업체 하나를 춤으로 변화시켰다.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거룩하게되기)'이다. 나는 조르바라고 하는 위대한 자유인을 겨우 책 한 권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다."
(231)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그는 노벨상 후보에 두 번씩이나 올랐으나 수상자가 되지 못했고, 사후에 정교회의 반대로 정식 매장되지 못하고 고향인 크레타 이라클레이온에 묻혔다)
에필로그 受惠와 施惠에 대하여:
(256)내 숙제의 핵심 중 하나는 사람의 관계를 관류하는 시혜의식과 수혜의식의 마찰과 윤활이다.시혜의식은 관계의 끝을 알리는 징후라는 것이 나의 잠정적 결론이다. 행복한 관계에 시혜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수혜자가 있을 뿐이다.그 까닭은, 언제나, 충분히 고마워하는 수혜자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에세이>와 작가정신의 수혜자였다.)
(257)독자와 내가 서로 수혜자라고 우길 수 있게 되기만 한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글쟁이일 수 있을 터인데,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올 것인지. 하지만 오는 것을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겠다.내가 만들고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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