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을 설치고 6시에 집을 나섰다.
<강남고속터미널>에서 7시 30분 '포항'행을 타야 했기 때문에.
출발 15분 전, 閔 선생은 이미 와 있었다. 그녀도 밤잠을 제대로 못 잤겠지?
예정된 시각에 정확히 차는 터미널을 빠져나갔다.
<선산 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차는 4시간 10분 만에 우리를 <포항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놓았다.
분홍원피스 차림의 늘씬한 여인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느낌으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복자였다.
그밖에 낯선(용서하게, 43년 만이 아닌가?)제자들이 웅기중기 모여들며 반갑게 환영해주었다. 우리는 <동해중학교> 총동창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영철군의 차에 올라 그들이 약속해 놓은 <어부횟집>으로 갔다.
초대받은 네 분 선생님
김회장의 인사
잠시 후에 교감선생님이 박 선생님이라는 분과 함께 오셨다.
우렁우렁한 음성은 여전하나 몸은 많이 수척해지셨다.
선생님도 제자들도 나를 거리에서 만나면 잘 몰라보겠지?
주름진 얼굴에 배 둘레에 햄(?)을 두른 육십다섯 할매를.
칠십을 바라보는 네 분 선생님과 오십 후반에 들어선 십여 명의 제자들이 둘러앉아 우선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제자들은 우리가 이름을 몰라 난처해 할 걸 미리 알고 각자의 목에 名札을 걸었다. 우리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스승의 은혜’를 입을 모아 불러주었다.
그런 후 큰절까지 올리고 준비한 떡 케익을 잘랐다.
애초 내 계획은 몇몇 제자들을 만나 잠시 懷抱나 풀고 저녁차로 올라가려 했는데 뜻밖에 규모가 커져서, 당혹스럽고 한편 부담스럽기조차 했다.
그러나 저희들은 또 이렇게 수십 년 만에 만나는 선생님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의 계획에 맡기기로 했다.
점심 후 교감선생님과 몇몇 사람들은 훗날을 기약하고 작별했다.
뒤에 남은 일행은 <오어사>를 한바퀴 돌면서 정담을 나누고 쉼터에서 선생님들을 위해 노래도 불렀다.
귀호의 노래
복자의 노래
저녁과 노래방 행사까지 마치고 호미로 길에 있는 숙소로 갔다.
이곳도 제자가 잘 아는 곳이라고 예약까지 해 줬다.
바다가 바로 눈 아래 펼쳐지고 어둠 속에 멀리 포항제철의 불빛이 보석 띠를 두른 듯 아름다웠다.
제자들이 하나둘 떠나고 귀호와 순득이가 남아, 내가 가져간 43년 전 편지묶음을 펼쳐 하나씩 읽어 내려갔다. 어떤 것은 소리 내어 읽기도 하고 어떤 것은 목이 메어 눈으로 읽기도 하면서 편지 속 사연을 이야깃거리 삼아 밤 깊은 줄 몰랐다.
민선생님의 아침산책
아침엔 그들이 살뜰히 챙겨준 따끈한 전복죽을 먹고 숙소를 떠났다.
복자가 포항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었다.
이번 만남을 주선한 일등공신이다.
함께 서울까지 올라가게 된 경옥이가 <경주빵>을 하나씩 챙겨주었다.
복자, 니 억수루 고맙데이~~
돌아오는 KTX 차창 밖으로 하루 동안의 일들이 走馬燈처럼 스친다.
정성을 다해 우리를 환대해 준 제자들을 생각하니 뭉클하고 가슴 뿌듯하다.
스물셋 멋모르던 시절에 만난 열네 살 소년소녀들이 이제 오십을 훌쩍 넘었으나 만나는 순간 다시 어리고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 웃고 이야기하는 동안 시간은 잠시 멈춘 듯했다.
세월의 激浪을 헤쳐 오면서 깎이고 다듬어져 저마다 아름다운 작품이 된 제자들을 바라보며 참으로 흐뭇하고 대견했다.
그들의 앞날이 더욱더 밝고 하루하루 행복이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2013.5.12.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