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16 토
김훈의 글로는 두 권짜리 <자전거여행>을 읽은 게 전부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았건만 최인호의 그 잘 팔리는 책을 한 권도 읽은 게 없다. 대학 다닐 때는 소설을 꽤 많이 읽었건만--
다만 에세이집 <산중일기>가 내가 대한 최초의 최인호 글이다.
두 편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글이 ‘좋은 수필’인가를 생각했다.
한 사람은 고 2때부터 소설가로 데뷔해서 <별들의 고향><길 없는 길><상도>등으로 명성을 날렸던 사람, 또 한 사람은 오랜 기자 생활을 해오면서 여러 권의 수필과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칼의 노래><남한산성>등으로 계속 주가를 올리는 사람-
아무래도 수필은 개성의 문학이니 개인 취향이 많이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수필’이라는 잣대를 들이대고 살피니 여러 가지 특징이 비교되었다.
‘선답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산중일기>는 그냥 부담 없이 읽어 나가기에 알맞은 글, 사색을 요하는 깊이가 없다. 관찰이 피상적이다. 상투적인 표현이 많다. 선답 에세이라는 부제를 의식하고 억지로 꾸민 듯한 구석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 유명한 최인호의 글을 왜 한 번도 접하지 않았는지 답이 나오는 것 같다.
6-70년대에 분명 나도 최인호의 글을 읽어보려 마음먹고 책을 펼치기는 했으리라. 연후에 글이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아 책을 닫았음에 틀림없다.
** 최인호의 결정적 실수--글의 말미(289쪽)에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인용했는데 본문의 내용은 ‘죽음에 이르는 병’의 내용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부적절한 인용으로 오히려 글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안타깝다.
김훈의 글은 보다 단단한 느낌이 온다. 흐르는 강물에 시선을 던지듯 읽어나가다 문득문득 멈추게 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그때 잠시 시선을 고정시키고 머물러야 글의 앞뒤가 보이고 글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또 압축적이고 상징적이어서 시의 맛을 느끼게 한다.
글을 피상적으로 써 내려가는 게 아니라 부분부분 깊이 천착해 나가고 있음을 본다. 오죽했으면 <칼의 노래> ·집필을 끝내고 나니 이빨이 한꺼번에 여덟 개나 빠졌겠는가.
<혼불>의 최명희 마냥 김훈도 고혈을 잉크로 찍어서 글을 쓰는 사람인가 보다.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한 모델이 바로 김훈선생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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