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애송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맑은 바람 2009. 5. 12. 10:26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앞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 - - - - .

- < 문학춘추 > 1965년 -

 

***'50원짜리 갈비'가 지금 젊은이들한테는 감이 오질 않을 거야.

60년대엔 대한극장 입장료가 70원, 학생 전용극장인, 아데네극장, 명동극장, 드라마센터,

경남극장(많이도 다녔지)입장료가 30원이었어. 그것도 동시상영으로 두 편씩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세상이 점점 좋아진다고들 하는데 무얼 기준으로 하는지는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옛날에도 좋았던 것들이 아주 많았어.

이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라 안타깝기까지 하지--

 

시인은 50도 못 살고 세상을 버렸으나 고난 속 틈틈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수의 시대'를 누리다 갔어.

이렇게 재미나고 뜨끔하게 하는 시들을 잔뜩 남겨놓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