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방/피정과 말씀

왜관 베네딕도 피정의 집-혼자 떠나는 여행 3

맑은 바람 2009. 5. 27. 11:37

  

 

 오전 8시 10분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렀다.

버스나 기차나 차 시간을 놓치면 낭패를 보게 되는 건 같은 데도 기차 시간 놓치는 게 더 두려웠다.

 

가슴을 콩당거리며 출발 15분 전에 驛舍로 들어섰다.

얼마만인가?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본 일이--

혼자 감개무량해서 두리번거리며,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서울역 대합실을 둘러본다.

인터넷 예매를 했더니 기차표가 휴대폰에 들어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종합안내소에 물으니

그냥 타면 된다고 한다. 개찰구를 빠져 나올 때도, 기차에 올라서도 검표원은 보이지 않고 표 보자는

사람이 아무 데도 없다. 세상 살기 좋아져 공짜 승객이 없어져서 표 관리도 허술해졌나?

그 옛날엔 제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검표원이 객실마다 돌아다니며 승차권 확인을 해서, 표를 미리

꺼내들고도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었는데--.

비어 있던 옆자리에 젊은 여자가 털썩 앉는다. 서너 시간 나란히 앉아 가는 것도 인연인데싶어 눈이

마주치면 목례라도 하려고 쳐다보았으나 내 모습이 전혀 그녀의 시야에 들어가질않았나 보다.

에라, 껄적지근하지만 나도 몰라라다.

 

 한 시간 만에 차는 천안에 닿고 다시 <대전역>- 아주 오래 전에 남편이랑 이곳을 지나면서 잠시 머무는

동안에 금방 말아내 준 따끈한 우동을 급히 후루룩거리던 기억이 떠오르는데--이제 驛舍에 그런 낭만

은 없다. 무의미하게 사각의 시멘트 건물이 승객을 보내고 맞을 뿐이다. 옆자리 여인처럼.

차창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둥그스름한 산들, 소 대신 트랙터와 경운기가 돌아다니는 논밭--

듬성듬성 흩어져서 일에 한창인 농촌사람들 --한가로운 농촌 풍경보다 쭉쭉 잘도 뻗은 길과

고층아파트들이 도농 간의 거리를 좁혀주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3시간 반 만에 도착한 <왜관역>-난생 처음 와 보는 낯선 역이지만, 도시 어디서나 보는 건물들이

들어차 있어 생경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목적지가 지척에 있는 줄 알고 걷기 시작했는데 내가 찾아들어간 곳은 엉뚱한 곳-

<왜관 베네딕도회 수도원>이었다.

성당 건물 주변을 두 바퀴나 돌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봐도 그 어디에도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의 어느 수도원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 시각이면 피정 온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할 시간인데도 빈집인 걸 깨닫고 발길을 돌려 나오는데

어디선가 불쑥 머리 허연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났다. 길 건너서 한 10분 더 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배는 고파 오는데 5월 끝자락의 땡볕이 만만치 않아 기운이 빠지기 시작한다.

<피정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밥 못 먹은 사정부터 이야기했다.

식사시간은 이미 지났고 밥통에는 딱 세 숟갈의 밥이 붙어 있었다. 그 밥알들이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식사시간 이외에는 침묵을 원칙으로 하고, 강의실과 성당을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쉬는 시간도 고작

5분 정도로,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으나, 자발적인 동기로 모인 사람들이라 누구하나 힘들어하거나

툴툴거리는 사람이 없다. 모두 진지하고 순간순간에 열성을 보였다. 그들에 비하면 난 초짜고

이방인이었다. 모두 신앙의 대선배들로 보였다.

대부분이 자정이 넘도록 기도에 열중하는데 난 침대 속을 택했다.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침구가 맘에

들어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난생 처음~

 

 여기도 자전거 길이~

 

 오른쪽이 수도원 담장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정문

 

 

 수도원 성당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그래, 나도 희망을 찾으러 칠곡에 왔다~

 

 드디어 도착

 

 베네딕도 성인

 

 우리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강의실과 성당과 숙소가 있는 피정의 집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휴게실

 

 이 청초한 붓꽃 속에도 하느님이 계시다

 

 2박3일의 일정은 즐거운 식사시간과 함께 가볍게 흘러갔다.

마음 치료를 온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을 가볍게 한 것처럼--

이번 피정의 목표는 <희망 기도>를 통해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다.

자기성찰의 시간 중에 남편이나 자식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신부님의

결론은 딱 하나였다.

 

‘<희망 기도>를 통해 당신을 먼저 바꿔라, 그러면 남편도 자식도 주위사람들도 바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바꾸기 위한 기도를 계속했다. 큰 효과를 보았다고 기뻐 눈물 흘리는 사람들도 많았으나

난  그들처럼 되지 못했다.  버려야 할 마음 속 짐들을 반도 못 내려놓은 채로 일정은 끝났다.

                                                   ( 2009.5.22 금-5.24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