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한비야, 김남희처럼 혼자 여행다니는 일이었다.
젊어선 이리 저리 걸리는 일이 많고 또 겁이 많아 용기를 내지 못했으나 이제는
‘지금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일을 저지른다.
주보 광고란에서 <피아골 피정의 집>의 피정 일정을 보고 1박 2일 피정 신청을 했다.
‘피아골’ ‘피정’ 얼마나 당기는 단어인가?
피아골의 봄도 보고 레지오 마리애 활동 시작을 자축하는 의미로 떠나는 거야.
여럿이, 또는 둘이 다닐 땐 스케줄이나 표를 끊는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혼자만의
여행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실행해야 한다. 그 또한 ‘자유로와’ 좋다.
세상에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아서 임의로 뭔가 할 수 있을
때가 좋다.
일찌감치 집을 출발, 남부터미널에서 구례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내 자리에 이미 어떤 여자가 태연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난 그 여자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여기 제자린데요?”
여자는 일어날 생각도 안 하고 자기 표를 꺼낸다. 그러면서 내 표를 보자고 하더니
“이 차가 아니잖아요? 이 옆에 있는 차로 가세요!”
고속버스를 타본 게 언제였던가 기억도 까마득하다 했더니 시작부터 헛다리를 집는다.
옆자리 신경 쓸 일이 없는 일인석이 좋기는 좋다. 옛날에는 장거리여행을 하재도 옆자리에
신경이 쓰여 머뭇거리곤 했는데--
산수유 매화마을을 지나 <피아골 피정의 집>에 닿았다.
일인실로 안내 받아 들어서며 작은소리로 탄성을 질렀다.
하얀 시트가 깔린 방이 무척 정결한 데다 방안 장식이라고는 십자가 하나가 달랑 벽에
걸렸을 뿐이었다. 갑자기 수도자가 된 기분이었다.
지리산 자락의 피정의 집
정결한 숙소
벽에는 십자가 고상뿐~
짐을 풀고 바로 강의실 겸 성당으로 쓰이는 3층 옥탑방(?)으로 올라갔다.
피정의 집 원장님인 강길웅신부님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가까이서 뵈니 자그마한 체구에
소탈한 인상이 사람을 금세 무장 해제 시킨다.
일정에 따라 저녁식사와 강론이 이어지고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나는 필요 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됐다.
강론의 내용이 쉽고 또 주제가 가슴에 와 닿는다.
'누구에게나 걸림돌은있다. 피해 가려 들지 말고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자.'
우리는 배역을 선택할 수 없다.
우리는 ‘1 달란트밖에 받지 못한 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청소부의 몫을 할 수밖에 없다면 청소부 중에 가장 부지런한 청소부가 되겠다고
맘먹어야 한다.
노나라 어느 관리가 늙은 어머니에게 이제 힘들게 일하지 말고 그만 쉬시라고 했더니
“백성들은 일하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지면서 착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베짜기를
계속했다지 않은가?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 불평의 문으로 빠져나간다.
없다, 안된다, 나는 못한다고 징징거리는 '결핍의 심리'는 불행을 자초하고, 이것이면 충분하다고 만족하며 감사 드릴 줄 아는 '풍요의 심리'는 복을 불러들인다.
'최선을 다하고 매사에 감사하는 일'-참으로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조깅 삼아 쌀쌀한 아침 공기를 헤치고 <연곡사>로 향했다.
신부님의 안내로 연곡사의 보물 국보 등을 새삼 귀한 눈으로 보았다.
아침 산책 길
부근의 <연곡사>로~
`
<대적광전> 앞의 신부님
정안수로 목을 추기고
구름처럼 떠있는 매화
아침 산책을 마친 피정의 집 사람들
아침 후 일요미사를 드리고 두 번째 강론을 들은 후 귀로에 올랐다.
혼자 떠난 이번 피정 동안 함께하되 홀로 있는 침묵의 시간에 오롯이 ‘나’와 만나 ‘자신’과의
대화에 충실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다. 여기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하는 자는 불평하지 않는다.
참고 최선을 다하면 자랑스럽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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