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르릉”
“네, **중학교 상담실입니다.”
“선생님, 저예요, *경이, 기억나세요?”
“으응, 노래 잘 부르던 양*경이…”
“네, 저 이번에 대학 들어갔어요. 서울 음대 성악과에.”
“우와, 축하한다. 멋있다!”
“특차 전형에서 수석했어요.”
“거기다 일등까지!? 얼굴 좀 보자, 축하해 줄게.”
‘좀 있다가요, 선생님. 저 살부터 빼고요.“
“꼭 와야 돼. 기다릴게”
‘네, 선생님.“
6년 전, 내가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우리 반이었던 아이다.
성적도 우수하고 평범한 군인 가정의 자녀라서 예능 방면으로 나가는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담임이 원래 아이들 노래 듣는 걸 좋아하는 습관이 있어서 별다른 종례사항이 없을 때는 노래 잘 부르는 아이를 앞으로 나오게 했다. 그때 경이는 늘 단골 손님이었다..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면 아이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듣곤 했다..
소풍 때면 여러 학급 아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또 경이를 불러냈다.
나는 그때마다 힘찬 박수와 함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네가 대성하면 얼굴보기 힘들어질 거라고도 했다.
그 후 3년 뒤, 다른 학교로 전근 가 있는데 그리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저 서울 예고 진학했어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난 국민학교 때는 미용사가 되고 싶었다.
심심하면 동네 아이들을 모아다 놓고는, 머리를 죄다 풀고 하나씩 빗기고 따 주고 묶고 했다.
마냥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중학교 시절, 위생병원 근처에 사는 친구가 있어 그리 자주 놀러 다니면서 간호원이 되고 싶었다.
깔끔한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고 , 심신이 허약해 있는 환자들을 정성껏 간호하는 모습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고교 시절, 국어선생님을 흠모했다.
복도 창가에 서서 지나가는 선생님을 몰래 훔쳐보기도 하고,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칭찬 받는
짝궁을 몹시 질투하고 시샘하기도 했다.
과목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면 자연 그 과목을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른 과목보다
좋은 결과를 얻게 돼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나의 못 말리는 끼----
쏘다니기 좋아하고, 영화광 소리 들을 정도로 영화 좋아하고, 책을 들면 온갖 시름을 잊고…
이런 이유들로 해서 만만한 게 국문과 진학이었고, 교사의 길에 들어선 뒤 후회 없이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교단을 지켜 오게 된 것이다.
초임 때는, 원래 소심하기 짝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아이들 앞에 서는 일이 끔찍했다.
짓궂은 사내아이들이 장난스런 질문을 던져 올 때면 얼굴이 달아올라 수업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모를 때도 있었다.
10년쯤 지나서야 유연하게 아이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손자를 대하는 할머니 마음이 되어, 아무리 말썽을 피우고 속을 끓여도 행동을 나무라지, 아이가 밉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50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담임을 하느냐고 말하는 젊은 선생도 있다.
그러나 뭘 모르는 소리다.
담임을 안 하면 육신은 편할지 모르겠으나 학교 다니는 재미가 없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어도, 독신보다는 자식들과 지지고 볶고 하는 것이 더 살 맛 나는
이치와 같다.
방학 직전 가족행사로 하와이에 갔던 우리 반 영주가 초콜렛을 소포로 부쳐 왔다.
입 안에 녹는 달콤한 맛과 함께 둥글둥글한 영주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作法의 십계명 (0) | 2009.06.08 |
---|---|
잠실벌에 울려 퍼진 환성-마라톤 완주 (0) | 2009.06.08 |
칭찬-삶의 활력소 (0) | 2009.06.08 |
돌아오지 않는 마음 (0) | 2009.06.08 |
늙은 척 하지 마라 (0) | 2009.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