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잠실벌에 울려 퍼진 환성-마라톤 완주

맑은 바람 2009. 6. 8. 01:45

 

 마치 입학 시험을 치르러 가는 어린애 마냥 긴장이 되어 잠을 설친 끝에 새벽부터 서둘러 종합운동장으로 향했다. 8시경이었는데도 주 경기장엔 인파가 밀려들기 시작, 덩달아 흥분되었다.

날씨가 싸늘해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니 콧등이 맹맹해 오는데 진이는 옆에서 연신 재채기를 해 댄다.

사람들이 노란 봉투를 들고 다니는데 보니 자루처럼 생겨, 나도 얻어다 뒤집어쓰니 임시 방한복이

되었다.

스탠드엔 여러 회사 사원들이 단체로 참가해 유니폼을 입고 웅성거리고, 경기장 안 여기저기서는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 달리기로 몸을 푸는 사람들로 제각기 바빴다.

우리도 마사모(마라톤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의 지시에 따라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시간이 되어 잠시

볼일을 보고 오니, 다들 어디로 가고 달랑 진이랑 둘이만 남았다. 이 황당함이란--

이만 칠천이 모였다는데 어디서 일행을 찾는담.

우리 둘이라도 헤어지지 말자고 손을 꼭 붙들고 있는데 성이와 원이가 바로 옆에 와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반갑던지 얼싸안을 뻔했다.

출발신호가 울리고 처음엔 넷이 나란히 뛰었으나 한 2km지점부터는 실력차(?)가 나기 시작,

성이가 앞서 나가고, 원이도 우릴 챙기다가 다시 진이가 떨어져 나가고 나도 뒤쳐지자 앞서 가 버렸다.

 

마라톤의 물결은 차가 끊긴 도로를 끝도 없이 흘렀다.

그 장엄한 물결은 가히 장관이었다.

뛰다 걷다 드디어 헥헥거리며 백제 고분로에 이르자

“5km 남았습니다. 기운 내세욧!”

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다시 죽기살기로 달리는데 가슴이 답답해 온다.

허리부분의 압박감 때문인 것 같아 한 손으로 바지 앞자락을 들추고 뛰니

그 모양새가 오죽했을까!

 

8km지점쯤에 이르렀을 때 앞에 낯익은 모습들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애야! 부르니 *중씨도 함께 고개를 돌린다.

*중씨는 내 꼴을 보더니 *애 먼저 가라며 내 옆에 와 속도조절을 해 준다.

내가 나머지 2km를 무난히 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중씨 덕분이다.

난 그 자리에 벌렁 눕고 싶었거든!

‘내 또 마라톤 하나 봐라.’

‘이런 지옥훈련을 왜 자청했던고!’

누구는 옛날 생각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던데 난 그게 통 되질 않는다.

다 포기하고 자유롭고 싶은 중에, 슬그머니 동창 카페에 올린 공약이 생각나서

오직 ‘그 생각’에 매달려 주 경기장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과업(?)을 수행했다!!

(200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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