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라도

섬진강 옥정호와 마암초등학교

맑은 바람 2009. 12. 2. 12:56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토끼풀꽃,/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꽃등도 달아준다” (김용택 ‘섬진강 1' 앞부분)

 

  12월 1일, 어느덧 결혼 35주년. 이 날을 <가족의 날>로 정해 놓았건만 아직 제 둥지를 틀지 못한 노총각 아들들에 민망하여 슬며시 새벽녘에 집을 빠져나왔다.

섬진강 상류 <옥정호>를 만나러 간다. 김용택의 시와 삶의 근원지였던 <덕치초등학교>와 <마암초등학교>도 잠시 들를 예정이다.

 

 경부선을 타고 가다 천안 논산 고속도로를 경유하니 단박에 전라북도 임실 땅으로 들어선다. 27번 국도를 따라가다 운암대교를 건넜다. 우회전해서 삼거리 <어부집>을 지나면서 749번 지방 도로로 접어든다.

 

                                 섬진강 어부네집-민물새우탕이 얼큰하다

 

                                시레기 말리는 곳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길 옆 언덕 위에 <마암초등학교>가 보인다. 돌아나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길을 재촉한다. 찻길은 강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다가 차 한 대밖에 갈 수 없는 길이 나온다. 외진 길인데도 마주 오는 차를 세 번 만났다. 한쪽은 낭떠러지인 좁은 길 위에서 부비적거리며 간신히 빠져나갔다. 서로 낯붉히는 일없이--

 꾸불꾸불한 길을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6km 남짓 가니 마을이 나타나고 길은 끊겼다.

여나믄 가구 정도로 보이는 마을은 인적이 없고 하얀 진돗개 한 마리 뛰어나와 컹컹 짖다가 내가 반색을 하니 제풀에 싱거워 꼬리를 내린다.

                              차 한대 비켜가기 어려운 길

 

                                     섬진강 상류-길이 끝난 곳

 

                            겨울 채비를 끝내고-밥짓는 연기인가?

 

 언덕 위에 번듯하게 서 있는 정자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섬진강 옥정호를 바라보았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서 그리도 감탄을 자아냈던 물안개 낀 옥정호는 아니었어도 초겨울의 잿빛 하늘이 내려앉아 호수는 한 폭의 수묵산수화였다. 먼지 낀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듯해서 자꾸 눈을 비볐다.

 

 

 

 

 

                             

 

                            

                                   단풍낙엽 이불이 푹신하다

 

 강물이 뒤따라오며 더 머물다 가라고, 좀 천천히 보고 가라고 옷자락을 잡아끄는 듯했으나 아쉬움을 안고 돌아 나왔다.

 

 마암초등학교로 향하는 돌길과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니 텅 빈 운동장 가엔 흰 소녀 조각상이 나그네를 아랑곳 않고 다소곳이 책을 보고 있다. 교실 쪽에선 재잘거리는 아이들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곳 아이들은 한때 좋은 시인 선생님을 만나 시의 맛을 알고 그들의 일상을 시로 푸는 일도 잘 할 줄 알게 되었으리라.

                                    아이들은 매일 이 계단을 타박타박 오르리라

 

                                   독서하는 소녀

 

                               전교생 64명, 교직원 14명-비율로는 외국 부럽지 않아~

 

  낯선 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다가온 학교 庸人 같은 분이 있어 김용택 시인의 출신학교이면서 최종 근무지였던 <덕치초등학교>까지의 거리를 물으니, 예서 16km를 가야 한단다. 허위허위 차를 몰아 그곳을 향했다. 주위에 엄청난 규모로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어 머잖아 이곳의 ‘깊은 고요’도 사라지리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산 속에 아늑히 자리한 덕치초등학교는 校舍는 크지 않았지만 오래된 벚나무가 병풍을 두른, 드넓은 운동장이 푹신한 잔디에 덮여 있었다. 만국기 펄럭이는 잔디운동장에서 신나게 공을 차며 꿈을 키우는 아이들, 늦은 봄날 벚꽃 그늘 아래 오순도순 둘러앉아 꽃비를 맞으며 시 낭송에 귀 기울이는 똘망똘망한 눈동자들이 떠오른다.

                                봄이면 운동장을 환하게 물들이는 벚나무

 

                                   아이들 41명, 선생님 13명-이런 곳에서  선생노릇해 보고 싶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섬진강 1' 뒷부분)

 

                                                                                                      (2009.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