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2일 ~24일(2박3일)
때는 2월 말이지만 입춘 우수도 지나고 경칩을 코앞에 두었으니 ‘봄’나들이라 해도 좋을 것같다.
대학 친구 셋이 2박3일 고성-통영 여행길에 올랐다.
풋풋한 스무 살 즈음에 만나 그저 옷깃을 스친 인연 정도로 알고 지냈는데 예순이 넘어 이렇듯
불쑥 만나 여행을 떠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삼 년 전, 내 글이 어떤 잡지에 실린 걸 보고 대학교 때 은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최초의 독자로부터 온 전화가 은사님이라니-- 그때의 기쁨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지난 1월 <공무원 연금>지에 선생님의 글이 실렸다.
학창시절, 냉철하고 예리해서 현학적이라고 느껴 멀리했던 선생님 글이 이제는 푸근하고 부드러워
지혜로운 노인을 대하듯 편안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전화를 드렸더니, 2월 말에 국문과 친구들과 함께 꼭 놀러 오라신다.
남녘의 봄이 그때쯤 한창일 거라고--
한 달여 전 여섯 명이 약속을 ‘찰떡같이’ 했지만 막상 떠날 때는 셋으로 줄었다.
나처럼 못 말리는 여행중독자(?) 말고는 그때그때 사정 때문에 계획을 취소하는 일은 茶飯事라,
그러려니 했다.
월요일 이른 아침, 남부터미널에서 승객 5명만 달랑 태운 버스는 4시간 10분 만에 삼천포에
닿았다. 거기서 택시로 20분, 고성의 선생님 댁에 도착하니 점심때였다.
우리가 열아홉일 때 서른다섯의 패기 넘치는 젊은이였던 선생님은 어느덧 80을 앞둔 백발의
노인이 되어 우리 앞에 서 계셨다. 뵙는 순간 가슴이 짠해오며 콧등이 시큰거렸다.
그분 또한, 꽃 같은 나이 때 만났던 제자들이 오랜 풍상을 겪고 주름진 모습으로 나타난 걸
보시고는 얼마나 당혹스러우셨을까?
그러나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잠시의 당혹스러움은 잊은 채 스무 살 제자와 젊고 당당한 스승으로 돌아갔다.
원두커피를 갈아 커피를 직접 끓여 주시고 최근에 엮은 수필집에 멋진 싸인을 넣어 한 권씩 건네주셨다.
얘기꽃이 피어나니 40여 년 전 대학 캠퍼스에서의 일들이 어제런 듯 눈에 선했다.
종교를 쉽게 받아들일 듯싶지 않았던 선생님이 일 년 전 가톨릭 신자가 되셨는데 그 사연을 담은
감동적인 비화도 들려주셨다.
제목만 봐도 얼마나 푸근할지 알 수 있다
최근에 수술을 해서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 듯해 잠시 머문 뒤 통영으로 내려왔다.
통영 가거들랑 꼭 들리라며 메뉴까지 골라 주신, 항구 부근의 횟집 ‘수향’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만족할 만한 저녁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시내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통영의 ‘가장 전망 좋은 집’이었다.
일찌감치 숙소에 짐을 풀고 쉬고 있는데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성 싫다고 통영으로 달아난 놈들, 내일 고성의 '참맛'을 보여줄 테니 올라가는 길에 다시
고성으로 오라”고--
‘아유, 선생님. 그만 됐는데요--’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예, 선생님 알았어요. 내일 다시 뵐 게요~”
얌전한 처녀들처럼 공손하게 대답한다.
이튿날 케이블카로 <미륵산>에 올라, 바로 아래 산중턱에 자리한 박경리의 봉분도 보고 멀리 봄 햇살에 출렁이는 남녘 바다와 그 너머 점점이 자리한 다도해의 섬들도 바라보았다.
통영 중심가로 나가 <중앙 활어시장>을 둘러보고 지역 특산음식이라는 '도다리쑥국'을 맛보았다.
점심 후 시내를 한가로이 돌다 銀河水에 兵器를 씻었다는 <洗兵館>에 올라, 14만이 깃들여 사는
시가지를 바라보며 포근한 봄을 만끽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가서 산책 데크를 따라가면 해발 461m의 미륵산 정상에--
궐패(闕牌)를 모시고 출전하는 군사들이 출사(出師) 의식을 거행하던 곳
반가운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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