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自畵像)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 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1937년 가을 작)
***남현동 그 집은 잘 복원되고 있는 걸까?
그가 한창 친일행적자로 부각되는 와중에 남현동집이 남의 손에 넘어갈
위기에 처했었다.
지금이라도 복원에 들어갔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람들은 그의 친일행각은 입에 거품을 물며 떠들면서
맏아들인 그가 광주학생 사건 때 주동자로 체포되어 옥살이를 한 후
중앙고등 보통학교를 퇴학 당해서
그 아버지의 희망을 꺾어버린 이야기는 왜 묻어 두는가?
누가 뭐래도 미당선생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임에 틀림없다.
'글사랑방 > 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 10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9.<꽃> 김춘수 (0) | 2010.12.12 |
---|---|
8. <오감도> 이상 (0) | 2010.12.12 |
6.<농무> 신경림 (0) | 2010.12.11 |
5. <서시> 윤동주 (0) | 2010.12.11 |
4. <향수> 정지용 (0) | 2010.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