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 10 편

6.<농무> 신경림

맑은 바람 2010. 12. 11. 22:45

 

 農舞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꺼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1973년 발표, 제1회(1974) 만해문학상 수상작>

 

***1970년대 산업화에 밀려 피폐해져 가는 농촌의 모습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신명이 나야 할 <농무>는 한풀이로 변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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