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 10 편

4. <향수> 정지용

맑은 바람 2010. 12. 11. 21:31

 

  향 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조선지광> 65호 1927년 3월 작)

 

***한때는 월북작가로 대학에서조차도 작품을 대하기 어려웠던 정지용 시인-

그가 어디에 살든 두고 온 고향집과 고향집 앞을 흐르던 실개천을 잊을 수 있을까?

늙은 부모를 고향집에 두고 온 모든 이의 마음의 고향인 이 시를 나지막이 읊조리는

순간 울컥하고 가슴을 치미는 슬픔이 있으리라.***

'글사랑방 > 21 세기에 남을 한국의 시 10 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6.<농무> 신경림  (0) 2010.12.11
5. <서시> 윤동주  (0) 2010.12.11
3. <풀> 김수영  (0) 2010.12.11
2. <진달래꽃> 김소월  (0) 2010.12.11
1.<님의 침묵> 한용운  (0) 2010.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