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서울

환구단-중명전<서울역사문화 12경 중 제 3경>

맑은 바람 2012. 5. 3. 22:49

 

햇볕은 쨍쨍, 길바닥은 후끈-

그러나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서울에서도 가장 중심인 시청 앞과 건너편에 있는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 거리를-

 

오늘 돌아본 곳들은 일제의 고의적인 파괴와 광복 후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인식부족으로 옛 문화재가

헐린 채 제대로 복원되지 못해 초라한 모습들로 남아있는 역사문화 현장들이다.

 

또 덕수궁을 중심으로 조선제국 비운의 황제 고종이 아관 파천했다가 돌아와 독살당한 현장들을

돌아보며, 반쪽짜리 나라일망정 내 나라에서 우리말 쓰고 우리가 이룩한 경제 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오늘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환구단]

         <환구단> 정문이 아니고 이 뒤에 환구단이 있음을 시사하는 한식 대문

 

          대한제국의 상징물 <환구단> 제사를 드리는 3층 제단은 없어지고  하늘신의 위패를 모신 <황궁우皇穹宇>가 남아 있다.

 

             오른쪽  조선호텔(1913년 일제에 의해 지어진 조선경성철도호텔의 後身) 쪽에 환구단圜丘壇 입구가 있다.

 

 

 

           바로 뒤에 호텔이 있어 입구가 옹색하다

 

                 무서운 표정이나 익살스러운 해치

 

                                  답도에 쌍용이 아로새겨져 있어 <환구단>은 <대한제국>을 세운 후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입구의 천정에도 황룡이-

 

                                   조선의 天神을 모신 삼층 누각-<조선호텔> 안에 있다. 고층 빌딩이 병풍구실을 하고 있다

 

          환구단의 <石鼓> 1902년 제작, 제천의식 때 사용하는 악기를 형상화함.   몸통의 용무늬는 조선 최고의 조각 중 하나로 평가됨

 

               [중명전]

                1890년 <황실도서관>으로 준공되었으나 두 번의 화재로 원래의 모습은 소실되고 현재에 이름

                1905년 11월 16일 오후 3시30분~오후 7시 사이에 이곳 <중명전>에서 고종황제의 허락없이 이토의 강요와 협박 아래 

                조선제국  외무대신 박재순과 원로 대신들이 조약을 체결했다.

 

           러시아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중명전> 최초의 모습

 

                1890년경 제작,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

 

                                              역사는 때로 의로운 자를 비웃고 흘러간다~

 

                    <을사늑약>은 무효다. 따라서 <간도협약>도 무효다. 우리땅을 '한반도'라 표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간도를 포함한 우리땅을 무어라 불러야 마땅할까?   *勒: 굴레 륵()

 

광복 67주년, <중명전> 뜰에 벌은 날고 등꽃은 향기를 뿜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