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잘가라, 금강아

맑은 바람 2014. 5. 30. 08:16

 

새벽 5시 반,

차고에서 뒤척일 금강이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났다.

다가가는 나를 보자 눈을 크게 뜬다.

게운 걸 닦아주고 아침준비를 위해 들어왔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나가니 상체를 들고 반긴다.

‘혼자 있기 싫었구나.’

어학교실을 갈까 말까 하다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 일단 문화원엘 갔다.

3시 30분, 경복궁역에서 여유회 친구들을 만나 <서울미술관>까지 갔다가 혼자 먼저 왔다.

 

금강이는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자주 오물을 토해냈다. 저녁에 작은아들내외가 다녀간 후 남편이랑 금강이 곁을 지켰다.

몇 차례 몸을 뒤척이다가 오물을 토해내더니 마침내 잠잠해졌다. 30일 오전 0시.

 

금강아,

너는 2003년 12월, 두리보다 작은 강아지로 우리 앞에 나타나 11년 가까이 우리와 함께 살았다.

어려서 한번 크게 장이 탈 난 적이 있고는 그 후로 잔병치례 한번 안 하고 잘 살았지.

어느 때부터인가 먹는 게 신통치 않아 신경 쓰이게 하더니 이번에도 며칠 설사하다가 나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콩팥의 병(만성신장염)이 깊었던가 보다.

미리 알고 고쳐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구나.

 

-금강아, 이 녀석아, 오줌 좀 아무데나 싸지 마라, 니 오줌 때매 잔디 다 죽인다.

-현관문 벅벅 긁지 마라, 문 다 부서진다.

-제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마라.

삼십육계 줄행랑 친 널 찾아 온 식구가 총 출동해서 찾아 나선 게 얼마냐?

-밤에 시끄럽게 울지 좀 마라.

딱 늑대 울음소리라 뒷집 노수녀님이 吉하지 못하다고 싫어하신다.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그 순한 눈망울에 화를 담아본 적 없었지.

내가 뭐라 야단을 칠라 하면 한 번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했지.

그 모양이 우스워 내가 웃음을 참다가 폭소를 터뜨리면 다가와 온몸에 털을 묻혀주며 비벼대곤 했지.

 

그러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 많고 붙임성 좋아 사람들과 잘 친해지고,

산책 데리고 나가면 넘치는 기운을 주체 못해 지가 앞장서서 오히려 주인을 끌고 가고,

보는 사람마다 잘생긴 너를 두 번 세 번 보며 감탄했지.

듬직한 네가 있어 사시사철 현관문 열어놓고도 맘 놓고 살았다.

 

몇 년 더 살아도 될 텐데 너는 왜 이 시점을 택했니?

네 주인이 싱가포르 간다니까 네가 먼저 작별한 거니?

게스트하우스 열면 네가 성가스러운 존재가 될까 보아 큰형을 위해 떠난 거니?

 

잘 가거라, 금강아!

엄마의 간절한 바람대로,

다시 태어나거든

저 태평양 깊은 바다 돌고래가 되어

이 풍진 세상 모른 채 살아라.                                     

 

2011년 어느날, 나비와 금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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