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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여행 산문집

맑은 바람 2019. 8. 25. 20:53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여행 산문집

 

<론리 플래닛 매거진 코리아>20133월부터 20179월까지 연재되었던 58편의 여행산문을 모은 책.

뷔페식당에 들어간 기분. 요것조것 맛있는 요리도 있고 그저 그런 요리도--

모든 유명인들은 유명세를 낸 만큼 대단한 글을 써내지는 않는다.

장마다 꼴뚜기냐?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는 가장 순수한 여행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여행지에서 나와 같은 인간을 만날 때, 언젠가 아마도 낯선 내가 누군가를 만나리라는 것

풍경과 유적지가 아니라 그 속에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여행이라고

그래서 이 책은 여행지와 관련된 수필인데도 여행 사진은 한 장도 없이 삽화만 넣었나 보다.

 

재밌는 글 중 몇 편은 다음과 같다.

**<단독여행>

중국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옌지에 갔을 때 단독여행자의 고단한 시간들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홀로 있을 때야말로 여행지의 모든 것들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꼼꼼히 살필 수 있는 묘미가 있기는 하지만-- 단독여행자의 고단함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외로움도 너의 것이야> 외국 나가서 혼자 글 쓴다는 일:

석 달 동안 소설을 쓰기 위해 독일 바이에른 주의 소도시 밤베르크에 갔으나 상점이 일찍 문을 닫거나 휴일에는 아예 아무 곳에서도 아무 것도 살 수 없어 허겁지겁했던 시간들의 기록. 전업주부의 비애를 맛보며 1L짜리 와인 리슬링에 취해 지내던 이야기가 실감난다.

**<이게 청춘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태국 끄라비 해변마을 아오낭에서 스쿠터를 타고 담배연기를 뿜으며 온종일 돌아다녔던 일- 청춘이 틀림없이 지나간 나이임에도 그 순간은 청춘이었다고 기억하는 마음.

*재미난 표현:p.64

-낮의 아오낭은 지쳐 잠든 애완동물 같았는데, 밤의 아오낭은 야행성동물처럼 눈을 반짝였다.

(같다,처럼 을 쓰지 않는 것이 더 고급스런 표현이라는데--)

**<이코노미석에 앉아 조종사의 눈으로>독서의 매력:

영국항공의 선임부기장으로 보잉 747기를 책임진 조종사가 쓴 <비행의 발견>이라는 책에 심취해서 지루한 비행시간을 거뜬히 보내고 남들이 바라보는 세계를 이해할 때 느끼는 자유로움을 만끽한 글

**<순천만에서 바다의 대답을 듣다>이 글은 그 자체가 선문선답

**<멸종위기에 놓인 낯선 사람’>우리가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객지에서그걸 잃었을 때 우리는 순간에 에트랑제가 된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먹히기 전까지는 멸종하지 않는다. 다만 알지 못할뿐.

**<안중근의 손가락이 내게 들려준 말>조직은 인간을 난쟁이로 만든다. 고독은 우리의 성장판이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해야 할 일을 할 때 인간은 자기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

**<카프카의 불 피우는 기술>너는 언제 한 번이라도 길에서 우는 아이를 위해 불을 피워 보았는가? 카프카에게 그런 멋진 일화가 있었다니--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누구인가?>그는 국내건 해외건 낯선 곳에서 걷고 또 걷는다. 그 오랜 걷기 끝에 나무그늘에서 쉬다보면 여기는 어디이고~ 라는 질문이 나온다.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리스본의 밤에 듣는 파두의 매력> 서민적인 식당이 많아 사람을 편하게 해준다는 리스본, 거기에 나이든 이들이 구성지게 부르는 파두는 또한 얼마나 심금을 울릴까? 또 한 군데 가고싶은 여행지가 생겼다.

 

모든 책의 위력:

 

그들은 약간 거만스럽다

뭔가 달라보인다

너희들, 이 정도로 쓸 수 있겠어?

 

그러나 기죽지 마라

옷이 날개거든!

  (2019.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