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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에 카사노바를 만나다

맑은 바람 2020. 5. 18. 17:16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중에 같은 베네치아 출신 카사노바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카사노바=바람둥이의 이미지를 지닌 인물에 대한 검색을 해봤더니, 단순한 바람둥이가 아니라 음악, 문학쪽에도

천재적인 소양을 갖추었고 바이올린 연주를 썩 잘 한다고도 했다.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뭐 읽으세요?"

"카사노바를 읽는다, 칠십에~"

"이십 때에 읽어야지~"

"그땐 민망해서 들쳐볼 수도 없었지, 지금이야 초연한 척하고 읽을 수 있지만--"

아들과 나눈 대화다.

책을 읽으면서도 혹시 손녀가 다가와

"그거 무슨 책이야?"

묻기라도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면서 읽는다.

아, 이 못말리는 할망!


--사랑과 예술의 유혹자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원저는 프랑스어로 씌어짐

미셸 들롱 지음/이효숙 번역

(원본 프랑스어)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1725~1798

베네치아 공화국 출신/연극배우의 아들/191cm

죽기 전에 조카에게 수기원고를 하나 물려주었는데 禁書로 묶여 있다가 2세기 후에 출간된다.

그것이 자서전 <내인생 이야기>다.


[제1장 유럽의 한 베네치아 사람] 

당시 베네치아는 무역으로 번창하여 향락산업이 발달, 유럽의 관광객들을 불러들였다.

도박과 가면무도회는 일상화되었다.

관능적 현기증의 화신/사제--장교--여행자--도박꾼--유혹자--낭비가--이야기꾼--마술사--도서관 사서

 

카사노바는 자기자신을 과단성있는 도박꾼, 낭비가, 늘 단정적인 이야기꾼이라고 묘사했다.

연극배우의 아들로 태어난 카사노바에겐 두 동생이 있는데 두 살 아래인 프란체스코는 화가로 성장하여 프랑스왕립회화 아카데미에 들어가고, 5살 아래인 조반니 바티스타는 드레스덴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학술원장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카사노바는 교회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학공부를 하다가 이어 성직자의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신학생 시절 잘생긴 어느 교우와 동침하다 신학교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문학, 의학, 화학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천재성을 과시하던(?) 그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로마에서 신부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교황의 조카의 애인을 납치한 죄목으로 로마에서 쫓겨나 콘스탄티노플로 간다.

케르키라(베네치아와 콘스탄티노플 사이에 있음)에서 잠시 군생활을 하지만 승진의 기회가 더디자 군복을 벗는다.

베네치아로 돌아온 그는 바이올린주자로 생활하다가 원로원의원 브라가딘을 그의 마법적 지식으로 뇌출혈로부터 구해낸다.

독신남 브라가딘은 그를 양자로 받아들여 함께 생활한다.

 

'물을 만난 고기'가 된 카사노바는 도박과 여자와 신성모독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다니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되기 직전 파리로 건너가 프리메이슨단에 입회한다. 루이 15세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된 후 베네치아로 돌아온다.

방탕한 생활과 첩자활동이 드러나 1755년 7월 두칼레궁이 내려다보이는 피옴비 감옥에 갇힌다.

15개월 후에 탈출하여 자유의 몸이 되나 베네치아는 금지의 땅이 된다.

유럽을 떠도는 사기꾼이 된 카사노바--

(그런데 왜 세계적인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조차 이 '망난이 카사노바'의 전기를 썼을까?)

1763~1764년, 그는 채무자들에 쫓기고 성병(매독)으로 고통받는다. 그의 나이 40도 되기 전에.

그는 노년에 글을 쓰고 책을 펴내기도 하면서 체코의 두흐초프 성에 있는 발트슈타인백작의 도서관 사서로 일한다.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13년을 보냄.(1785~1798)

 

(29)1797년 보나파르트가 베네치아에 무혈입성하고 몇 달 뒤 카사노바는 두흐초프에서 죽는다.

그와 함께 하나의 유럽이 사라진다.

 

[제2장 연극들]

모차르트의 극본작가인 로렌초 다폰테를 만나고 <돈 조반니>집필에 참여한다.

**돈 조반니:바람둥이, 죄를 뉘우치지 않고 지옥불로 떨어진다.

 

**카사노바가 추구한 행복: 모험가적 생활과 연애생활의 회복

 

[제3장 리베르티나주]:'자유로운 방탕'의 뜻


 [제4장 지식]

카사노바의 신비학: (대개의 사람들을 속여 넘겼으나 모든 것은 끝이 있게 마련)

 

(64)뮈든지 다 견딘다고 믿었던 내 체계는 끝장나 버렸다.내 모든 악랄한 짓들을 벌주고, 그렇게 해서 나는 죽음으로써 나의 맹신을 종식시키려고 거기서 나를 기다리던 복수의 신을 인정했다.

 

(66)프리메이슨: 카사노바의 운신의 폭을 넓혀줌.

이 단체의 회원인 덕분에 여행이 자유로웠고 고관대작 부인들과의 사교도 가능했다.

 

(67)모든 것을 다 아는 데 도달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자 열망해야 한다. 여행을 하고 넖은 세상을 알고싶어하며, 다른 자보다 열등해져 우리가 사는 시대에 자기와 대등한 자의 무리에서 배척당하기를 원치 않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프리메이슨이라 불리는 단체에 입문해야 한다.

 

(74)카사노바가 닮고 싶었던 인물:생제르맹 백작--계몽기 유럽의 증상을 나타내는 인물/공주의 사생아?/사교적 재능과 언변이 뛰어남/왕을 설득해 샹보르성에 실험실을 만듦/학식풍부/다양한 언어 유창하게 구사/위대한 음악가이자 화학자/호감 가는 얼굴/모든 여인을 친구로 만드는데 도사/자제력과 여유가 있음/자신이 불멸의 존재이며 청춘의 묘약을 갖고 있다 주장

(카사노바의 됨됨이를 말해준다)

 

[제 5장 회고록]

(78)카사노바가 명성을 얻게 된 두 사건: 피옴비감옥 탈옥 사건/폴란드 귀족과의 결투

 

(83)카사노바의 문학적 스승: 볼테르

볼테르 71세 때,카사노바 41세 때(1766) 나눈 대화

--아, 제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제가 당신의 제자가 된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20년 동안 나를 영예롭게 해주시오.그러고 나서 내게 그 증거를 갖다주러 오겠다고 약속하시오.

--약속드리겠습니다.하지만 저를 기다려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약속하겠소 그 약속을 놓치느니 차라리 내 목숨을 놓치겠소.

 

(94) 그 베네치아 사람의 노년을 보호해 줄 수 있었던 너그러운 운명은 그가 '위대한 저서'를 집필할 수 있도록 조용한 안식처를 제공함으로써, 계몽기 회고록 가운데 가장 아릉답고 가장 진실한 것들을 담고 있는 그 갸냘픈 페이지들을 보호해주기도 한 것 같았다.

--카사노바 전문가 헬무트 바츨라비크

 

(98)카사노바는 복합적 인물이었다--유혹자, 위험한 인물, 모험가, 행운을 좇는 자, 몽상가,명랑한 떠돌이, 행복한 사랑의 왕자

 

--도박에서 속임수를 쓰고 자유사상가이며 종교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믿지 않고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그들을 속이기 위해서라면 더없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공공연히 떠벌린다.--<베네치아의 비밀 첩자들>에서

(첫만남에서 카사노바가 룻소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처럼 룻소도 그를 몹시 싫어했으리라 짐작된다.

책을 다 읽고나서 내가 그렇듯이--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특히 여성들과 연애하며 살아온 사람으로

한시대를 풍미하고 인구에 膾炙되었던 사람이라면 뭔가 남다른 매력이 있을 줄 알았다.

의적 임꺽정을 읽고 의적은 무슨! 순 도둑놈이네 하며 실망했던 것과 같은 불쾌함이 남는다.

그러나 어쩌랴!

슈테판 쯔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문학동네가 만든 카사노바는 또 어떤 모습으로 내게 다가올지 궁금해지는걸~)

 

(99)그는 많이 안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아는 게 별로 없다.춤, 프랑스어, 취향, 사교계의 관행, 처세술 등 관련 규칙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의 희극은 희극적이지 않은 것들뿐이며 철학서적들은 철학이라고는 전혀 담겨 있지 않은 것들 뿐이다.

---하지만 그의 모험들처럼 이야기할 거리가 있으면 거기에 굉장한 독창성, 순진함, 모든 것을 행동으로 연출시키려는 일종의 드라마 장르적 요소들을 담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탐내고, 모든 것을 가지고 나서는 모든 것 없이 지낼 줄 도 안다.

--더없이 요란한 젊은 시절과 때로는 다소 애매한 모험의 이력들 때문에 몹시 무질서하게 살았으면서도 그는 명예와 섬세함, 용기를 보여주었다.--그의 뛰어난 상상력, 그의 조국의 활기,그의 여행들, 그가 가졌던 모든 직업들, 정신적 신체적 자산이 없는 가운데서도 유지한 의연함 때문에 그는 희귀한 사람이 되고 그와의 만남은 소중해진다.

--리뉴대공 <카사노바의 생각들, 인물묘사들, 편지들>

 

(102)(카사노바의 <내 인생에 대한 개요>를 읽으니 그의 자서전을 사지 않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 무척 너그러운 사람이다.)

 

(103)그에게 부족한 자질이 있는데 자신의 행동을 잘 이끌어가는 정신이다. 게다가 품위도 없이 오늘은 장교, 내일은 신학생, 모레는 바이올린 연주자--이런 식이었다.그가 만약 자신의 변덕에 저항할 줄 알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그럼에도 그는 모험가들 가운데 으뜸이다.--알프레드 드 뮈세

 

(115) 그는 막연하고 수사학적이고 과장이 심하며, 도발적이고 용감하기도 하지만 그 인물은 당신 관심도, 호기심도 전혀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불행한 건 그가 미스터리도 없고 순수함도 없다는 점입니다.(내가 카사노바에 정나미가 떨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시대가 변한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프랑스 대혁명 이전처럼 처신했을 때, 고물상에나 던져버리기 적당한 그의 인생--

--페데리코 펠리니

 

(117)코멘치니가 인용한 말:

만약 네가 귀족이었다면 너는 네 이력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나쁜 사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너는 가난해서 뭔가 되려면 성자가 되어야만 한다.--카사노바 지도신부

--아이는 숱한 좌절감을 경험하고, 그의 부모는 그를 돌보지 않으며, 그는 모두에게 이용당합니다. 오로지 부자들만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문제삼지 않고 자유분방함에 몸을 맡깁니다. 이런 논리가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고 그것은 이후 파렴치한 태도의 기반이 되지요.

현실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고 투쟁했으머 부자들은 부유했고 명령했습니다.그것은 바로 오늘까지도 모든 문명들의 불변적 요소인데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한 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1977년 1월 루이지 코멘치니의 <뤼마니테>와의 인터뷰 중에

 

***카사노바를 다룬 영화들:

1.1927 알렉상드르 볼코프 감독

2.1933 <카사노바> 르네 바르베리스감독

3. 1969 <베네치아의 한청년> 루이지 코멘치니 감독/ 카사노바의 여명기를 다룸

4.1976 <카사노바>(이탈리아)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도널드 서덜랜드 주연

5.1977 <카사노바>(오스트리아)프라츠 안텔 감독/토니 커티스 주연

6.1982 <바렌의 밤> 에토레 스콜라 감독/ 카사노바의 황혼기를 다룸

7.1987 <카사노바>(영국) 시몬랑턴 감독/리차드체임벌린 주연

8.1992 <카사노바>(프랑스) 에두아드 니어만스 감독/알렝드롱 주연

9.2006 <카사노바>(미국) 라세 할스트롬 감독/히스 레저 주연

(영화의 소재로 이만한 게 없나 보다, 이렇게 많은 감독들이 손을 댄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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