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굴비 만들기

맑은 바람 2021. 9. 20. 21:48

어제 경동시장에서 부세를 24마리에 3만원 주고 사왔다.
크기가 좀 작은 편이라 손이 많이 갔다. 지느러미 잘라내고 아가미와 내장 꺼내고 더러 나오는 알 따로 발라 담아놓고 비늘까지 벗겨내느라 영감 할미가 분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족히 3시간 가량 걸렸다. 다음날 말릴 요량으로 딤채에 넣어 뒀다.
오늘 아침, 선선할 때부터 말리는 게 좋을 듯싶어 일어나자마자 부세를 꺼내서 채반에 키진타올을 깔고 그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마당의 탁자에 올려놓기가 무섭게 쉬파리, 똥파리들이 아우성치며 달려든다. 나비도 멀찌감치서 야옹~야옹~한다. 나는 달겨드는 파리떼를 쫓느라 재게 팔을 놀려 부채질을 했다.
할배가 좋은 생각이 났다며 1인용 모기장을 들고 나온다. 비로소 채반에 담긴 부세들은 모기장 속에서 파리떼에 뜯기지 않고 편히 가을햇빛 속에 제 몸을 말려서 참조기맛 굴비가 되리라.

처가집에 내려간 큰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내일 비가 많이 온다니까 오늘 성묘 갔다오시는 게 어떠냐고. 전도 아직 안 부쳤는데 난감하다.
할배한테 의견을 물으니 일단 갔다오는 게 낫겠다 한다.
서둘러 미리 준비해 놓은 몇 가지 과일과 떡과 포만 챙기고 강남고속터미널로 갔다.

대기실은 크게 붐비지 않았고 바로 티켓팅이 가능했다. 일반이 우등보다 가격이 많이 싼데 소요시간은 같다고 한다.

굳이 비싼 표를 살 이유가 없어서 일반 고속으로 끊었다. 전용차선으로 1시간 30분도 채 되지 않아 청주터미널에 도착했다.
기다리던 아들네와 합류해서 호죽리 선산으로 향했다.
시조부모님 산소에 약식으로 진설하고 절 올리고 어머니 산소로 자리를 옮겼다. 생전에, 제삿상 차리지 말고 대신 추모예배를 드리라고 유언을 하셨기 때문에 제사음식은 올리지 않고 절만 했다.
큰아들이 하느님을 영접하고 찬송가라도 큰소리로 불러 드렸으면 어머니께서는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고 크게 웃으실 텐데~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갑자기 맘이 급해졌다.
한나절 집을 비운 걸 나비가 알고 제 친구들까지 불러 생선파티를 열지는 않았는지~
비둘기들이 헤집어 놓지는 않았을까?
집에 다 와 가니 천천히 걸을 수가 없었다. 할배와 저만치 떨어져서 뒤꿈치가 땅에 안 닫게 잰 걸음으로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렸다는 듯이 어스름한 속에서 나비가 야~옹 한다.
모기장은 그대로고 그 속의 생선들은 종일 햇볕에 제몸을 말려 꾸덕꾸덕해졌다.

 

나비야, 수고했다. 고마워~!

웃음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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