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9일(목) 윤이의 하루
(둘째손녀 윤이는 이제 2년 9개월이 됐다. 제 언니에 비해 말이 더디다고 걱정을 했는데 요새 가까이 데리고 살피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제 언니는 언어구사력이 너무 좋아 가끔 상대방의 비위도 상하게 하고 바른말을 해서 사람을 당혹스럽게도 한다. 의사소통만 되면 천천히 가도 좋다).
6시 40분 기상
우윳병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온다
할미 침대 위로 올라와 자리잡는다
'에고, 좀더 자지.'
"할미, <공룡장난감> 틀어줘."
유튜브에서 '공룡장난감'을 검색한다.
제 단골 메뉴를 가리키며 "이거 틀어줘" 한다.
공룡이 힘들게 알을 낳는 프로-
땀을 뚝뚝 흘리며 알을 낳는 광경을 꼼짝달싹 않고 본다.
아기 스테고사우르스, 트리케라톱스---곧잘 비슷한 발음을 낸다.
좀 보다가 새로 주문을 낸다.
"할미 이꺼 시여, 따꺼 보여줘"
"모볼까? 이거? 이거?"
새 메뉴를 선보인다
"이--꺼"
이번엔 장난감 자동차다
화면의 광고를 끄려고 마우스를 드니
"할미, 이거 조아" 한다.
그냥 놔두란 얘기-
꼬마 장난감들을 연결하니 로보트가 만들어진다.
"할미 이거 모야?"
"덤프트럭!"
모래를 실어나르는
중장비 트럭들이 선을 보인다
"할미, 끝났어"
이번엔 미니특공대를 고른다
취향이 완전 사내아이다.
이번엔 물고기 장난감
"이--거. 눌 러 줘~"
말이 당연히 느리고 어감이 다정하다.
방송채널을 틀어줬다
"나 보스 베이비 시어~"
EBS 딩동댕 유치원을 틀었다.
'코코 멜론'을 틀어달라 요구한다
"안돼 너 이거 봐야 돼"
(아들이 곁에 있었으면 좀더 부드럽게 말했겠지, "아가, 이제 이런 거 봐야 되요~"하고)
9시 반
아침을 준비했다.
미역국, 스팸, 밥
처음엔 넙죽넙죽 잘 받아 먹는다. 많지도 않은 밥을 절반 남짓 먹더니 뱉기 시작한다.
억지로 먹일랬더니 숟갈을 팍 밀친다.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밥이 쏟아진다.
일부러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제 잘못을 아는지 종아리를 한 대 맞고도 조용히 있다.
이 참에 나는 얼른 미역국에 밥 말아 설렁설렁 아침을 해결한다.
더 이상 프로에 관심이 없는지 공룡 가방을 챙기고
"할미, 밖에 나가자"
"할미 밥먹구~"
"안돼"
"할미도 안돼"
(애를 보는 건지 싸우는 건지~)
"할미, 모가 있어, 얼러와~"
하며 손을 잡아끈다.
선반 위의 아이스 티를 가리킨다.
"저거 먹을래"
아이스티를 타 준다.
"할미 최고!" 하며 엄지척을 한다
설겆이하는 사이 조용히 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할미, 똥" 한다
찬 걸 많이 먹어서 그런가 똥이 묽다. 배가 아팠었나 보다.
이번엔 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화장대 위에서 연신 점프다.
무척 재밌어하는 놀이-
어쨌건 제 시야권 안에 할미가 있어야 편히 논다.
아이 옆에선 책 한 줄 읽을 엄두도 못낸다.
용케 알고 한 줄도 다 읽기 전에 요구사항을 안고 끼어드니~
소윤이는 유튜브에 있는 공룡장난감을 좋아한다.
무익한데 너무 좋아하는 것같아 절제를 했다
그랬더니 지할비 팔에 매달려
"하찌, 저기 모가 있어" 하며 안방 쪽으로 유인한다.
"왜 이러지?" 할배가 묻는다.
"걔, 공룡장난감 보여 달라는 거야"
"할미, 조용해~!"
(알건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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