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전라도

옥정호의 물안개

맑은 바람 2022. 6. 27. 08:59

아침 일찍 온통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안개를 뚫고 순창에서 옥정호 쪽으로 방향을 잡아 27번 국도를 달렸다.

새 도로가 뚫리고 있는 고가 아래 희고 붉은 코스모스가 수줍은 듯 배시시 웃고 있었다. 가을은 역시 코스모스와 함께 오가나 보다. 운암대교를 건너 한참을 달린 후에 <국사봉 전망대>에 이르렀다. 짙은 안개 속에 방송국 차 한 대가 서 있고 사진 기자인 듯한 남자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앉아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3층 전망대에 올랐으나 시야에 들어오는 건 짙은 안개 띠였다.

오늘은 옥정호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붕어섬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또 헛걸음을 하고 말았다.

김훈 선생의 자전거도 물안개 낀 옥정호를 지났었지. 호수는 음전한 여인인 양 좀처럼 제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삼세 번 오란다.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돌아 나오는 길에 지은 지 꽤 오래 된 듯한 정자가 눈에 띄었다.

<운암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 숙종 때 효자 운암 이흥발의 호를 딴 것이라 한다.

정자에 올라 바라본 섬진강 위로 아스라이 안개에 싸인 운암대교가 보였다.

<국사봉 전망대>가 젊은이의 공간이라면 이 <운암정>은 세월의 켜가 쌓인 이들에게 더 어울릴 법한 그런 곳이다.

인적 끊긴 이곳에서 바람소리 벗 삼아 한나절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이나 뒤적이다가 강물소리 베고 누워 나비 잠 한 번 자 보았으면 좋으련만. (2010. 10.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