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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부두로 가는 길: 조지 오웰

맑은 바람 2023. 3. 17. 15:00

조지 오웰/르포르타주/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327쪽/초판1쇄2010.1.15/2쇄 2010.1.25/읽은 때 2023.3.5~3.17

-설구워진 좌파 '지식인'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1936년 서른셋의 오웰에게 '레프트북클럽'이라는 단체에서 영국북부 탄광지대의 실업문제에 대한 르포를 청탁한다.

오웰은 탄광노동자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습에서 절망과 희망을 확인한다. 단순한 보고를 넘어 번뜩이는 통찰과 특유의 유머를 바탕으로 치밀하고 생생하게 노동계급의 삶을 담아낸 이 책은 '실업을 다룬 세미 다큐멘터리의 위대한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무엇보다 당대의 사회주의자들을 분석하며 '왜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으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오웰의 이야기는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큰 울림을 전한다- 번역자의 말

조지 오웰(1903~1950)향년46세/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폐결핵으로 죽음

영국식민지 인도에서 태어남/'하급상류 중산층'에 속한 그는 영국의 이튼 스쿨을 마치고 인도제국경찰에서 일하기 위해 버마로 향한다./식민지 경찰활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과 파리에서 자발적인 부랑자생활을 하고 이 체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펴내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탄광지대 조사 활동을 마치고 그 결과물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을 내고 파시즘에 맞서 싸우러 스페인으로 떠났고 이 스페인 내전 체험을 '카탈로니아 찬가'를 통해 전한다.
이 두 경험을 바탕으로 '1984'와 '농물농장'이 탄생한다.
--사회주의란 결국 노동하는 인간을 '윗사람' 앞에서 굽신거리는 '개미'로 만드는 자본독재에 대한 모든 상식적, 양심적인 사람들의 반란일뿐이다-박노자의 추천사 중에서
(325)'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란 무슨 뜻일까?
나는 그것을 '밑바닥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하겠다.--역자의 말

1부 탄광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생활
1.브루커 부부의 하숙집에서
(23)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하숙인은 일주일에 30실링을 내면서 잘 때 말고는 절대 집에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였다. 나는 하숙집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자기집 하숙인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숙인의 돈은 바라면서도 하숙인이란 사람을 침입자로 여겨 하숙인이 절대 너무 편히 지내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듯 묘하게 감시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것은 하숙인이 다른 사람의 집에 살되 그 가족이 될 수는 없는 나쁜 시스템의 불가피한 결과다.
(28-30)하숙집을 떠나 또다른 산업도시로:
기차는 곧 탁 트인 시골로 빠져나갔다. 그런데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묘한 것은, 탁 트인 시골이 무슨 공원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영국처럼 복닥복닥하고 지저분하고 좁은 나라에서는 불결한 것을 거의 당연시하게 된다. 탄광쓰레기나 굴뚝 같은 게 풀이나 나무보다 더 정상적이고 그럴듯한 풍경같으며,아주 외딴 시골에 가도 쇠스랑으로 땅을 긁으면 깨진 병이나 녹슨 캔이 걸려 나올 것만 같다.---기차를 탄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건만, 브루커 부부의 어두운 부엌에서 눈밭이 펼쳐지고 햇살이 환하고 번득이는 큰 새가 있는 곳까지 아주  멀리온 느낌이었다.---꽤 오랫동안 아마 20분 정도 더 흐르는 동안, 기차는 탁 트인 시골을 덜컹덜컹 달렸고, 이어서 주택 밀집 지구가 다가오기시작했다. 그리고 외곽의 슬럼이,탄광 쓰레기가, 매연을 토해내는 굴뚝이, 용광로가, 운하가, 가스탱크가 다가왔다. 또 하나의 산업 도시에 들어선 것이었다.

2.막장의 세계를 체험하다
(31)우리 문명의 기반은 석탄이다.
서구 세계의 신진대사에서 석탄광부보다 중요한 존재는 땅을 일구는 농부밖에 없다.광부는 검댕 묻지 않은 거의 모든 것을 어깨로 떠받치는 검댕투성이 여인상 기둥과도 같다. 이런 이유에서, 석탄을 캐는 실제 과정은  꼭 지켜볼 만한 일이다.
(41)수직갱도 아래에서 수평 이동하는 어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땅 속에서 3시간 동안 3km 정도를 이동한 뒤일 텐데, 지상에서 40km를 걸어다닌 것보다 더 지칠 것이다.
(46)광부의 작업은 나로서는 공중그네를 타거나 그랜드네셔널에서 우승을 하는 것만큼이나 내 역량을벗어나는 일이다. 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기를 신께 빈다. 그런가 하면 내가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육체 노동도 있다.

정 필요하다면 나는 봐 줄 만한 거리 청소부가 될 수도 있고 무능한 정원사가 될 수도 있고,최악의 농장인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쓰고 훈련을 받는다 한들 광부는 될  수 없다. 그랬다간 몇 주 만에 죽어버리고 말 것이다.
(47-49)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될것이다./그 세계는 지상에 있는 우리의 세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머지 반쪽이다. /평화를 위한 모든 수단에 석탄이 필요하며, 전쟁이 터지면 석탄은 더욱 필요해진다.혁명기에도 광부는 계속 일하러 가야 한다. 아니면 혁명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건, 석탄을 파고 퍼담는 작업은 쉬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우리가 영국 북부에서 차를 몰고 가며 도로 밑 수백 미터 지하에서 광부들이 석탄을 캐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는 너무 쉽다.하지만 어떤 면에서 당신의 차를 모는 것은 그 광부들인 것이다.
꽃에 뿌리가 필요하듯 위의 볕 좋은 세상이 있으려면 그 아래 램프 빛 희미한 세상이 필요한 것이다./어떤 육체노동이든 다 그렇다. 그것 덕분에  살면서도 우리는 그것의 존재를 망각한다.아마도 광부는 다른 누구보다 육체노동자의 전형일 것이다./우리 모두가  지금  누리고 있는 비교적 고상한 생활은 '실로' 땅 속에서 미천한 고역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얻은것이다.

3.광부들의 삶
(55)영국인들의 터부:아침 근무 때 일하러 가기 전에 여자를 보면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오랜 미신은 아직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예전에는 새벽에 일하러 가다 우연히 여자와 마주치면 그날은 일하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세상에~ 지구는 넓고도 좁구나! 도대체 어떤 연유로 그런 미신이 생겨났을까?)
(60)광부가 생산해 내는 석탄은 평균 얼마나 될까?
나는 만일 예순까지 산다면 서른 권의 소설을, 아니면 기껏해야 보통크기의 책꽂이 하나를 채울 분량을써낼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평균적인 광부 한 사람은 8400톤의 석탄을 캐낸다.그 정도면 트래펄가 광장을 거의 60cm 높이로 덮어버릴 수 있으며, 대가족 일곱 가구에 100년 동안 연료를 공급할 수있는 양이다.
(61)광부들의 사고:
광부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사고율이 워낙 높아서 대단찮은 전쟁만큼이나 사상자가 나는 것을 당연시한다.
매년 900명 중 하나 꼴로 목숨을 잃으며, 여섯 명 중 하나가 상해를 당한다. 다른 어떤  직업도 이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67)부당한 대우의 일상화:
광부가 불구 판정을 받고 보상을 받는 처지에서도 한 푼의 돈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오기까지는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이렇게 저열한 불편과 냉대를 당하고, 늘 기다려야 하고, 모든 걸 상대방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것은 노동 계급의 생활에선 당연한 일이다.--그는 자신이 신비로운 권위의 노예임을 자각하며, 자신이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른그 무엇을 원해도 '그들'이 결코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4.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주택문제
(69)광부들이 사는 주택가를 말 그대로 수백 킬로미터씩 걸어보라. 일하다 보면 매일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매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만 목욕을 할 수 있는 집은 단 한 채도 발견하지 못하리라.
(71)주택부족이 계속되는 한, 지역당국에선 현재의 주택들을 좀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당국은 주택에 대해 '사용 부적합'판정은 내릴 수 있지만, 세입자가 이사갈 집이 없는 한 철거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때문에 사용 부적합 판정을 받은 집들은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게 되며, 그 때문에 더욱 열악한 집이 되어 버린다.언제 부숴버릴지 모를 집을 집주인이 수리할 리 만무이기 때문이다.예건대 위건 같은 도시에는 사용 부적합 판정을 받은지 여러 해 되었지만 아직 철거되지 않은 집이 2천 채 이상 있으며, 대체할 집이 지어질 가망만 있다면 도시 전역이 전부 사용 부적합 판정을 받을 것이다.
(이곳에 사는 많은 아이들이 폐병에 걸려 있음/조지 오웰도 폐병으로 사망한 걸로 보아 당시는 유행병이었던 것 같다.)
(82-83)캐러밴 거주지:
주택 부족이 낳은 최악의 결과/1931년경 수천 수만 가구나 되었다/위건의 경우 극동에서 본 것 말고는 그렇게 지저분한 곳을 본 적이 없다. 실제로 나는 그곳들을 둘러보며 버마에 사는 인도 쿨리들의 불결한 사육장 같은 거처를 바로 떠올렸다.
(101)조지 오웰은 그 유명한 '위건부두'를 보고싶어 했다.그러나 위건부두는 헐려버리고 이젠 그 자리마저 확실치가 않다.

5.실업수당으로 사는 사람들
(108)북부와 런던의 실업자들:
산업지대인 북부의 실업률이 아무리 끔찍한 수준이라 해도 런던에 비하면 빈곤이 덜 두드러져 보인다. 궁핍해 보이는 사람도, 걸인도 런던보다 적다./런던은 버려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소용돌이와도 같은 곳이며, 워낙 거대해서 고독한 익명의 생활이 가능하다. 그리고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으며, 자기를 아는 이웃들이 많은 곳에서는 가당치도 않을 정도로 망가질 수도 있다.그들은 온기를 찾아 영화관이나 강연장을 찾는다.
(114)우리는 영국에서 수백만 명이(또 전쟁이 터지지 않는 한)이승에서는 절대 번듯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게 낫다. 할 수도 있고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 하나는, 원하는 모든 실업자에게 약간의 땅과 연장을 제공해주는 것이다.생활보호위원회의 실업수당으로 연명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채소라도 기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건 가당찮은 일이다.
(118-119)실업수당 생활을 한번에 여러 해나 하다보면 점점 그 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수당을 타 쓴다는 게 여전히 불쾌하긴 하지만 더 이상 수치스럽지는 않아진다./사람들은 이전보다 긴축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운명에 발악하기보다는 생활수준을 낮춤으로써 상황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 것이다./하지만 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반드시 사치를 끊고 꼭 필요한 것으로만 사는 건 아니다.---유례없는 공황기에 온갖 값싼 사치가 늘어나는 현실이 가능한 것이다.전쟁 이후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 두 가지는 영화와 값싸고 맵시 있는 의류의 대량생산이다.
--3페니로 고기는 얼마 못 사지만 '피시 앤드 칩스'는 중분히 살 수 있다.--단연 돋보이는 것은 모든 사치 중에서도 가장 값싼 도박이다. 조직화된 도박은 이제 거의 주요산업의 지위로 올라섰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여왕이 사는 나라 영국의, 불과 100년 전 모습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더니 맞는 말인가 싶다.)

6.실업과 먹을거리
(123)--"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뮈지?"
-- "음식이요."
인간이란 무엇보다 음식을 채워넣어야 사는 가죽부대이며, 그에 비해 나머지 기능은 신성한 것에 가깝지만 급한 순서로 볼 때 언제나 그 다음이다.
(130)실업으로 인한 끝없는 비참함은 계속해서 고통 완화제를 필요로 하며 그런 차원에서 차야말로 영국인의 아편이다. 차 한 잔이나 아스피린 한 알이 통밀 식빵 한 조각보다는 훨씬 나은 일시적 흥분제가 되는 것이다.
(130-1)영국인의 신체적 퇴보:
셰필드의 거리를 걷다 보면 선사시대 동굴 거주인들 사이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그들은 키가 작고 이가 튼튼하지 못하다. 서른 넘은 사람치고 이빨이 성한 사람이 별로 없다.칼슘 부족이 아닌가 싶다.
(132-133)영국인의 체격이 저하됐다면, 그 이유는 부분적으론 분명 세계대전이 영국에서 가장 건장한 남성 백만 명을 골라다가 그들이 채 번식하기 한참 전에 몰살시켜버렸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보다 일찌감치 시작된 게 분명하며,궁극적으론 건강하지 않은 생활 양식. 즉 산업화(근대의 산업기술) 때문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결국엔 통조림 음식이 기관총보다 더 치명적인 무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7.그리운 노동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
(147)북부인에 대한 남부인의 견해:
영국에는 북부인의 속물근성이라 할만한, 북부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묘한 맹신이 있다./북부의 삶만이 '진짜' 삶이고, 북부에서 이뤄낸 산업화의 업적만이 '진짜' 업적이고, 북부에 사는 사람만 '진짜' 사람이며 남부엔 불로소득생활자와 거기에 기대 사는 사람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아무튼 '담력'있고 강인하고 '강직'하고 씩씩하고 인정있고 민주적이며, 남부인은 속물적이고 나약하고 게으르다는 지론이있는 것이다.  때문에 남부인은 처음으로 북부에 갈 때 어쨌든 야만인들 사이에서의 모험을 감수하는 문명인이 느끼는 막연한 열등감 콤플렉스를 품게 된다. 반면에 요크셔 사람은 런던에 오면 약탈 나온 스코틀랜드인이 되는 기분이다.
(157)노동계급의 가정에서는 다른 데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따스하고 건전하고 인간적인 공기가 있다. 나는 일거리가 꾸준하고 벌이가 괜찮다면 육체노동자가 '배운' 사람보다는 행복할 가능성이 많다고 감히 말하겠다. 그의 가정생활이 보다 건전하고 그럴 듯한 축에 들기 쉬워보이는 까닭이다. 나는 형편이 가장 나은 편인 노동계급 가정의 거실 풍경이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고 할만큼 너무나 편안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곤했다. 특히 겨울날 저녁에 차를 마시고  난 뒤, 조리용 난로에선 불꽃이 춤을 추고,난로 한쪽에선 아버지가 셔츠 차림으로 흔들의자에 앉아 경마 결승전 소식을 읽고, 어머니는 다른 한쪽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아이들은 1페니 주고 산 박하사탕 때문에 행복해하고, 개는 카펫에 드러누워 불을 쬐는 정경을  볼 수 있는 집은 정말 가볼 만한 곳이다.

2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
8.학교에서 익힌 편견
(178)모든 중산층은 계급적 편견을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그것은 사소한 계기만으로도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노동자들은 더럽고 노예처럼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경제적 여건이 좋아져서는 안된다는---/더군다나 그들의능력으로 자가용을 산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일종의 범죄행위로 간주한다.
(184)영국의 중산층은 어린 시절에, 노동계급을 혐오하고  두려워하고  무시하도록 배운다. 그러므로 훗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아, 이 책은 내게 독서가 '낙이 아니고 고된 노동'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아직 절반이 조금 지났다.)

9.제국경찰에서 부랑자로
(185)열네댓 살 때의 나는 혐오스러운 어린 속물이었지만 같은 계급의 또래 소년들에 비하면 약과였다. 속물근성이 사라질 줄을 모르며 너무나 세련되고 미묘하게 길러지다시피 하는 곳 치고 영국의 사립학교만 한 곳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사립학교에선 영국의 '교육'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없다.라틴어와 그리스어야 졸업한 지 몇 달도  못 돼 다 까먹는다 해도 속물근성은 계속해서 뿌리를 뽑아주지 않는 한 무덤에 갈때까지 메꽃처럼 들러붙는다.
(186)혁명적 분위기의 팽배:
전쟁당시와 그 직후(1918) 청년층의 노년층에 대한 반발/노년층은 아들들이 독일군의 기관총 앞에 짚단 쓰러지듯 픽픽 넘어가는 동안에 안전한 곳에서 단호하게 애국을 요구했던 것이다./그래서 당시의 젊은이들 사이엔 '노인네들'에 대한 묘한 혐오의 풍조가 있었다.
(191)인도제국 경찰이 됨:
그곳에선 백인이냐, 열등계급 원주민이냐가 문제/그들은 버마인을 원주민으로 내려다보긴 했어도 신체적으로는 꽤나 친밀한 접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에게선 영국의 노동계급에서 나는 냄새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부분의 몽골인종은 대부분의 백인보다 훨씬 나은 신체를 갖고 있다./백인은 극소수만 그것도 몇 년 동안만 아주 아름다울뿐, 대부분은 아무리 뭐라해도 동양인에 비해 미모가 크게 떨어진다.
(195)나는 5년 동안 인도제국 경찰 소속이었는데, 그만둘 무렵엔 내가 섬기던 제국주의에 딱히 뭐라 설명하기 힘든 염증을 느꼈다./타국민을 통치할 때는 자국민을 통치할 때보다 관대한 경향이 있다.그러나 그런 지배 체제의 일원이 되면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는 압제로 인식하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길에서 '원주민'의 낯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극악무도한 침략자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때문에 인도에 사는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애써 감추긴 해도 죄책감에 시달린다./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오웰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결론을 얻는다.
(200-203)조웰의 고해성사:
1927년에 휴가를 받아 본국으로 돌아온 나는 직장을 때려치울 결심이 이미 반쯤 서 있었고 영국의 공기를 한숨 들이쉬자마자 결정을 내려 버렸다. 그런 사악한 압제의 일원이 되러 다시 돌아가지는 않기로 결심한 것이었다.---내가 느낀 죄책감은 너무 엄청나서 속죄를 하지 않고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어졌다.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 편에서 압제에 맞서고 싶어졌다.--내 마음이 영국의 노동계급에게로 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다.--영국에 와보니 압제와 착취를 찾아보기 위해  버마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댤았다.---그때 내가 진심으로 원한 것은 번듯한 세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길을 찾는 것이었다.--일단 그들 사이에 섞여서 그들에게 받아들여진다면 나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것일 테고, 그러면 죄책감을 얼마간 떨쳐 버릴 수있으리라.나는 그렇게 생각했고,그것이 불합리한 생각인 줄은 당시에도 알았다.
그래서 마침내 라임하우스 지역의 간이숙박소를 찾아냈고 아무 거부감없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10.건너기 힘든 계급의 강
(217-218)직시해야 할 사실은,계급차별을 철폐한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는 점이다. 여기 중산층의 전형적인 일원인 내가 있다. 내가 계급차별을 없애기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행하는 거의 모든 것은 계급차별의 산물이다.나의 모든 관념은(선악에 대한, 유쾌와 불쾌에 대한, 경박과 경건에 대한, 미추에 대한)어쩔 수없이 '중산층'의 관념이다. 책과 옷과 음식에 대한 나의 취향, 명예에 대한 나의 감각, 나의 염치, 나의 식사예절, 나의 어투, 나의 억양, 심지어 나의 독특한 몸동작도 전부 특정한 훈육의 산물이며, 사회 위계의 윗부분에 있는 특정한 지위의 산물이다.그런 사실을 이해할 때, 나는 프롤레타리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그가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그와 정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계급적 특권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은밀한 속물근성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취향과 편견도 억눌러야 한다.나를 철저히 변화시켜야 하며, 결국엔 같은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노동계급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으로도, 더 어리석은 형태의 속물근성을 억제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삶에 대한 상류층적, 중산층적 태도를 완전히 버리기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그럴 수 있느냐는 아마도 그러기 위해 나에게 요구되는 것을 얼마나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11.왜 사회주의가 지지받지 못하는가
(230)지금은 생각있는 보통 사람이라면 사회주의자가 아닐 뿐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적의를 내보이고 있다. 그것은 주로 선전 방법이 잘못된 탓인 게 분명하다. 즉 지금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사회주의에는 근본적으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은 정작 적극적으로 지지를 해야 할 사람들을 쫓아버리는무엇이다.
(234)대부분의 중산층 사회주의자들이 이론적으로는 계급없는 사회를 위해 애쓰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의 구질구질한 사회적 위신에 악착같이 매달린다는 추악한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236)평범한 노동자에게, 이를테면 토요일 밤 아무 선술집에서나 마주칠 수 있는 유형에게, 사회주의는 더 많은 임금과 더 짧은 노동 시간과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사람이 없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 혁명적인 유형에겐, 즉 기아 및 실업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하고 고용주의 요 주의 인물 명단에 오른 유형에겐, 사회주의란 압제에 저항하는 일종의 구호일 뿐이다.
(237)세상에 비할 데 없는 꼴불견:
노동계급 출신이면서 노동당 하원의원 또는 고위 노조 간부가 되어, 정작 자기 동료들을 위해 싸우라고 선출됐건만, 그 자리는 그에게 오로지 편안한 일자리와 신분 향상의 기회로 삼는 자들이다.

12.사회주의는 어떻게 파시즘을 키웠는가
(271)기계적 진보의 논리적 귀결은 인간을 병 속에 든 뇌 비슷한 무엇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물론 우리가 뜻하는 바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미 우리가 향해가고 있는 목표이다./'진보'가 딱히 병속에 든 뇌는 아닐지 모르나 아무튼 편함과 무기력이 지배하는 인간 이하의 무시무시한 수렁일 것이다.
그리고 유감스러운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보'라는 말과 '사회주의'라는 말이 서로 떼놓을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286)파시즘은 알 수 없는 사회주의자가 무엇을 하든 그 '정반대'로 하겠다는 결단인 셈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잘못 비치게 하면 지식인을 파시즘쪽으로 쫓아버리는 위험을 저지르는 것이다.
(287)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는 파시즘을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자면 파시즘이 상당한 해악뿐만 아니라 약간의 장점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파시즘은 보수주의의 나쁜 변종뿐 아니라 좋은 변종에서도 힘을 얻는다.
(288)사회주의자들은 경제적인 면에만 눈이 멀어 있어서 인간에겐 영혼이란 게 없다는 가정에 따라 활동해 왔으며, 노골적으로건 암시적으로건 물질적 유토피아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말았다./파시즘은 유럽 전통의 옹호자 시늉을 할 수있었으며, 기독교 신앙과 애국주의와 군사적 가치에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파시즘을 머지않아 절로 사라질 예외적인 현상인 듯 여긴다면, 누구에게 몽둥이로 얻어맞고서 깨어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건 파시스트의 입장을 연구하고 나름의 일리가 있는지 알아본 뒤에 파시즘에도 바람직한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런부분은 사회주의에도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확실히 알리는 것이다.
(289)사회주의를 효과적인 형태로 널리 그리고 빨리 확산시키지 못한다면, 파시즘을 타도할 가망은 없어진다. 사회주의야말로 파시즘이 상대해야 할 유일한 적수이기 때문이다. 자본가와 제국주의자가 지배하는 정부는 강탈당할 염려가 있다 해도 스스로는 파시즘에 작정하고 대적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우리의 지배자들은 사회주의가 승리하는 꼴을 보느니 대영제국의 마지막 땅 한 평까지 이탈리아나 독일이나 일본에 넘겨주는 쪽을 택할 것이다.
(290)파시스트들의 목표가 '벌집국가'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그보다는 족제비의 지배를 받는 토끼들의 세상이라고 하는 게 더 적확할 것이다.우리는 그런 끔찍한 가능성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
우리가 함께 목표로 삼고 단결할 수 있는 이상은 사회주의의 바탕이 되는 이상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자유다. 이 두 마디야말로 온 세계에 울려퍼져야 하는 나팔소리이다.

13.우리가 해야 할 일
(292)사람들이 언제든 사회주의자로 활동할 태세를 갖추도록 해주어야 한다.
(295)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할 일은 사회주의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다.
(297)완고한 사회주의자는 자신과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이제는 제휴해야 한다.
(304)사회주의 운동은 너무 늦기 전에 피착취 중산층을 포섭해야 한다. 특히 숫자가 워낙 많아서 단결할 줄만 알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사무직 종사자들을 포섭해야 한다. 물론 그런 노력 역시 지금까지는 분명 실패했다.

내 생각엔 사회주의 선전에 쓰이는 '프롤레타리아 상투어' 때문이다.
실제로 광부나 부두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할 수도 있는 수많은 사무원과 점원들은 스스로를 '프롤레타리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305)진정한 피착취자는 수입이 적고 불안정한 모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배를 탄 사람들이며 한편이 되어 싸워야 한다.

(독서클럽의 추천도서가 아니였으면 평생 접할 일이 없을 책이다. 사회주의자건 공산주의자건 그 '윗대가리'들은 다 잘 먹고 잘사는 이기적 인간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주의자'를 믿지 않는다.그들은 그들을 따르는 대중을 착취의 수단으로 삼을 뿐이라는 것이 평소의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