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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기행(1) 니코스 카잔차키스

맑은 바람 2024. 12. 20. 22:05

1부 스페인
니코스카잔차키스 지음/송병선 옮김/열린책들/316쪽/초판1쇄 2008.3/초판6쇄 2016.1/읽은 때 2024.10.3~12.22

니코스 카잔차키스 연보:(1883~1957) 크레타 이라클리온 출생/당시는 오스만제국 영토/부친은 포도주와 곡물 중개상/19세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대학에 진학/25세에 앙리 베르그송 강의를 듣고 니체를 읽음/언어개혁을주도, 순수어를 폐기하고 민중어를 쓰자고 주장/28세에 작가인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결혼/31세에 아토스산 여행/호메로스, 단테. 베르그송은 나의 위대한 스승이라 밝힘/34세에 펠로폰네소스에서 조르바를 만나 갈탄광을 개발함/35세에 스위스에서 엘리 람브리다를 만나 사랑함/36세에 공공복지부장관에 임명되어 카프카스에 15만의 그리스인 구출작전 명령을 받고 떠남/39세에 안면습진에 걸림/45세에 군중 앞에서 소련을 찬양하는 연설을 함/49세에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작가로 살기로 결심함/재정적 어려움으로 아이기나로 돌아옴/52세에 중국,일본을 방문함/54세에 <스페인기행> 출간/62세에 오랜 동반자 엘레니 사미우와 결혼/64세에 불어로 <그리스인 조르바>출판/69세에 안면습진이 악화되고 눈에 심한 감염으로 고생함/70세에 오른쪽 눈 실명/<최후의 유혹>으로 그리스 정교회의 심한 비판을 받음/71세 때 교황은 <최후의 유혹>을 금서목록에 올림/이에 대해 카잔차키스는 아테네 정교회에 서간을 보냄/"성스러운 사제들이여,  여러분은 나를 저주하나 나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여러분께서도 나만큼 양심이 깨끗하시기를.그리고 나만큼 도덕적이고 종교적이시기를 기원합니다"/그는 림프성백혈병으로 진단됨/74세에 중국을 방문하고 일본을 경유해서 돌아온 후 아시아독감으로 사망함/크레타에 묻힘/

묘비명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스페인 여정

 

프롤로그
(7)흔히 창작은 가장 정확하고 고상하게 고백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과 고백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 그것은 새로운 땅과 바다들, 새로운 사람들과 사상들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마음껏 음미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오랫동안 머뭇거리며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시간이 그것들을 고운 체로 걸러서 나의 모든 기쁨과 슬픔의 정수로 정제시킬 때까지,내 안에서 조용하면서도 격렬한 결정화가 일어나 풍요로워지는 것을 느낀다.내가 보기에 이런 마음의 연금술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커다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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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기록한다는 것은 오만한 자아를 인간이라는 고통받는 편력 군대 속으로 던져 담금질하여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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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고해와 같은 글이 선행이 되기를 바란다.그 이상 바랄 게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예술을 창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내 마음이 실컷 절규하게 놔두고 있을 뿐이다.

제1부 스페인
스페인에 들어서면서
(14-15)마침내 비가 그쳤다.우리는 주위의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누런 진흙투성이의 날이었다.

그러나 산꼭대기는 미소를 짓고, 새들은 깃털을 털었으며, 우리 인간들은 진흙 속의 세상에서 행복해했다. 구름은 흩어졌고,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향기롭고 상쾌하게 씻긴 스페인을 볼 수있었기 때문이다.거친 산허리가 햇볕에 화사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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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지도 위에서 단정한 황소모양의 스페인의 모습을 내 마음 속에 그리려 애쓰고 있다.---수세기동안 이 스페인 지도의 한 부분을 거쳐간 모든 인종의 피를 섞어 다시 내 앞을 지나가게 한다.

바탕색은 피와 황금 기둥은 헤라클레스의 기둥

기둥을 두른 천에는 '보다 먼 세계로'(PLVS VLTRA), 이는 국왕 카를로스 1세가 신대륙 발견 후 적어 넣었다 함

양쪽 기둥 안엔 스페인 연합왕국(까스티야, 레온, 나바라, 아라곤, 그라나다)이 있는데 왼쪽의 성채는 카스티야 왕국, 오른쪽 사자는 레온왕국,황금쇠사슬의 방패 모양은 나바라 왕국, 빨강 노랑 세로줄 무늬는 아라곤 왕국,맨 아래 노란꽃은 그라나다 왕국 국기를 의미한다. 가운데 청색바탕에 백합은 부르봉 왕조의 문장이다.

이베리아인,켈트인,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카르타고인, 로마인, 반달족, 서고트족, 아랍인,유대인 등. 여러 인종이 피를 섞어 전사,지식인,시인, 왕으로 퍼졌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신비롭게도 이 모든 것을 심오하게 종합시킨 인물이 탄생했다. 그는 바로 스페인 전체의 주인공이며, 어울리지 않는 1회적인 얼굴들을 영원의 모습으로 융합했으며, 시간과 공간을 막론하고 가장 위대한 평의회에서 스페인을 대표하게 된 인물이다. 그는 바로 성스러운 순교자 돈키호테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그의 신비주의자 아내인 성녀 테레사가 있다. 그들이 바로 스페인의 성스러운 커플이다.
(20)스페인 정신의 결정체였던 돈키호테는 이렇게 외쳤답니다.
"오직 우리들 내면에서 희망하는 것만이 현실적이고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자 스페인 영혼의 또다른 결정체인 산초는 이렇게 주장했지요.
"오직 우리가 보고 만지는 것만이 현실적이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주인님,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은 단지 말입니다.말뿐이란 말입니다."

미란다 데 에브로
(22)에브로 강의 둑에는 미란다의 가난한 오두막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26)모든 것은 죽음에 속한다! 無, 무! 그 무엇도 아닌 것, 스페인의 영혼이 발하는 가장 심오하고 가장 특징적인 외침이 이 무에 대한 의식, 즉 인생은 꿈이라는 생각이다.가장 비천한 농부에서부터. 칼데론과 세르반테스에 이르기까지 인생은 꿈이라는 이 심오하고 비극적인신념이 울려퍼지고 있다.
<꿈을 꿉시다. 오 나의 영혼이여, 꿈을 꿉시다.>
(28)나는 스페인을 좋아한다.왜냐하면 스페인의 따뜻하고 여성스러운 정원이 박정한 황무지와 접해있기 때문이다.---이곳은 영웅들의 영혼을 만드는 장인들의 화려한 일터다.
(29)인생은 비극이다.그것은 즐거움도 놀이도 아니고 철학자나 미학자의 이론적 출발점도 아니다. 그것은 투쟁이다. 즉 먹느냐 먹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인생은 인간의 고기 맛을 보고 그것이 아주 맛있다는 것을 알고는 지금도 한없이 그 고기를 갈망하는 잔인한 동물이다. 그 동물은 마을과 도시에 들어가 인간을 발견할 때마다 잽싸게 낚아챈다. 인간의 살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30)스페인 사람들은 용기 속에 최고의 교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들의 황무지가 그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진정한 스페인 사람, 즉 스페인 서사시를 만들어낸 사람은 사막의 아이이다. 개인주의적이고 도도하며 용감하지만, 동시에 이 위대한 미덕의 모든 약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지 못하고, 공통의 계획을 따라가지도 못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 일들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수행하지 못한다. 그는 혼자다.선원도 없이 혼자만 있는 선장인 것이다.열정적인 스페인 사람이 순간적으로나마 다른 사람들과 융화되면, 그는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낸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이내 꺼져버리고 그는 그의 탑으로, 즉 자신의 영혼 속으로 물러난다.
스페인의 현재를 가장 완벽하게 대표하는 *미겔 데 우나무노는 <나!나!>라고 외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삶에서뿐만 아니라 죽은 다음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나는 추상적이고 개성없는, 아니 개성을 넘어선 유럽 사람들의 불멸을 원치 않는다. 나는 진정한 것,즉 오직 나의 스페인 정신에 걸맞은 유일한 불멸만을 원한다.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나, 나 자신, 우나무노, 미겔 데 우나무노는 나의 이 몸뚱이와 이 손톱 열 개와 발톱 열 개,그리고 나의 뾰족한 염소 수염과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1864~1936 스페인의 철학자)

부르고스
(32)군사도시, *카스티야의 머리-
*카스티야는 성 혹은 요새라는 뜻.
이 독수리 요새를 출발로 레온과 카스티야의 백작과 왕들은 스페인 땅에서 아랍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디게네스 아크리타스와 <엘시드>라고 불린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가 태어났다.
*디게네스 아크리타스는 어느 사제가 쓴 서사시의 주인공/아랍인 아버지와 기독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 용감한 전사는 중세의 이상적인 그리스 기사이자 영웅
(40~41)광장 뒤에 있는 역사가 깊고 찬란한 궁전은 이사벨여왕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성공적으로 돌아오는 위대한 순교자 콜럼버스를 맞이한 곳이다.
콜럼버스, 그는 '바다의 돈키호테'였다. 한때 무지갯빛 새들과 낯선 짐승들과 이름 모를 식물들, 그리고 신비로운 과일들과 두꺼운 금괴로 넘쳐났을 이 마당은 무성한 잔디로 뒤덮여 있었다.

바야돌리드:돈키호테의 생가가 있는 곳
(42~43)나는 우리가 가장 위대한 왕자 돈키호테의 황폐화된 영지에 도착했음을 알았다.여기 이 예언의 스텝지대에서 그는 위대한 봉건영주였다.여기서 이상의 기사 돈키호테는 노예를 해방시키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에게 정의를 심어주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빚을 갚고 세상의 근본적인 열정인 질투와 부정, 두려움과 부정직, 게으름과 오만에 맞서기 위해 길을 떠났다.
꿈을 깨려고 하지 않았던 이 공상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이 거친 산속에서 *키메라를 찾으러 나선다.바람이 바위 위로 불어오는 여름철에 바위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그러면 꿈과 현실의 경계는 머뭇거리다 사라져 버린다.
*키메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수의 하나
(45~48)세르반테스는 무적함대에 물품을 제공하는 일을 했고, 함대에 필요한 기름과 밀을 사면서 스페인 전역을 여행했다. 그러나 무적함대는 침몰했고(1588년 8월), 그와 더불어 세르반테스도 파산하고 말았다. 그는 비밀리에 아메리카로 떠나려고 시도했지만 체포되어 채무자의 감옥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런 다음 절망 속에서, 즉 그곳 감옥과 세르반테스의 쓰라린 가슴 속에서 돈키호테가 태어났다.세르반테스는 젊은날의 꿈과 스페인이 젊었을 때 꾸었던 꿈을 늙은기사의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그를 끔찍하고 냉혹한 현실과 함께 전쟁터로 보냈다.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고통을 보며 함께 웃고 울었다.왜냐하면 그것들은 세르반테스 자신의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든 스페인도 웃고 울었다.왜냐하면 위대한 사상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결국은 수백 곳에 상처를 입고 돌아오는, 종이갑옷을 입은 기사는 바로 스페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은 견딜 수 없이 슬픈 위기의 순간에 있던 스페인에게 그 어느 것보다도 값진 선물을 주었던 것이다.--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와 산초를 통해 파괴되던 스페인의 민족정신을 구했고 스페인과 함께 구원되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여행기는 다르다.비유와 상징들로 가득찼고 역사적 배경지식이 없이는 난해하다)

살라망카:
3C 전,세계각지에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던 살라망카 대학교가 있었다.
(56)스페인 시의 특징:
리라를 연주하면서 영웅 엘시드를 찬미했다.그들은 영웅주의를 숭앙했고 모험을 갈망했으며 삶과 사랑의 위업을 강렬하게 욕망했다.그래서 스페인의 기사들과 스페인의 웃음, 그리고 스페인의 눈물이 바로 스페인 시의 특징이다.
(59)스페인의 해방자,영웅,성인:
그는 성자였고, 조용했으며, 엄청나게 다정한 사람으로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법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프란시스코 히네르 데로스 리오스였다.
*프란시스코(1839~1915) 론다에서 출생. 크라우제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빌라--성벽, 성녀 테레사
(64)스페인의 정신:
모든 것이 無라는 인식, 즉 우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죽음만이 우리의 후계자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강인한 정신이 무,혹은 무존재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면 알수록, 그는 무상하고 무익한 순간을 더욱 강렬하게 살아간다 강인한 정신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죽음이 가장 강력한 흥분제이기 때문이다.
(65)아빌라의 성벽:
88개의 망루와 들쑥날쑥한 총안들,그리고 텅빈 지하통로도 옛날 그대로다.오늘날 이 성벽은 한 유명한 도시의 판잣집들과 별장들, 교회들.그리고 수도원들을 에워싸고 있다.
10세기보다 훨씬 이전에 이제는 너무 황량하고 조용한 이 광장은 일하는 아랍인들로 가득했었다.그곳은 오브리아키다.(유대인 거리)
(66)성녀 테레사가 수녀원에 들어가 생활하던 곳/후에 새로운 수도원 건립/'사랑은 힘이다' 외치며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늘 즐거워하고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으며 늘 유쾌하게 춤추며 노래했다.그러면서도 '모든 것은 無야'라는 말을 종종 외치곤 했다.

에스코리알--거대한 수도원
(74)에스코리알은 마드리드로부터 북서쪽으로 60km 떨어져 있다.이곳 험준한 바위 사이에, 불고문으로 죽은 성 라우렌티우스를 기리는 교회가 있다.
펠리페 2세는 전쟁에 승리한 후 자신과 성 라우렌티우스를 위해 거대한 수도원을 지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펠리페는 수도원 공사를 직접 지휘 감독했다.그것은 길이 208m, 폭 162m, 바깥창문 1100개, 내부창문 1600개와 1200개의 문, 86개의 층계, 그리고 16개의 안뜰로 이루어진 거대한 묘였다. 이 거대한 고문대의 외관은 호화로운 왕궁이었고, 고문대의 다리는 각각 56m높이의 탑 4개로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기행문이 볼거리,먹거리에 치중하여 그저 술렁술렁 읽기에 알맞건만, 이 글은 역사적 사실에 치중하여 

또 다른 흥미를 유발한다.)

마드리드
(84)유럽의 어떠한 수도보다 높은 곳. 하늘에 가장 가까운 수도.안달루시아 사람들은 '스페인 왕의 옥좌는 하느님의 옥좌 다음으로 높은 곳에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확한 말이다.
(94~96) 4인의 위대한 스페인 사람들:
1)호아킨 코스타;1844~1911
스페인이 개성을 잃지 않은 채 유럽에 통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현대 스페인에게 '아라곤의 강인한 사자' 호아킨 코스타는 일종의 세례요한이었다. 성서의 예언자처럼, 이 스페인 르네상스의 선구자는 동시대 사람들의 열정과 악의를 무마시켰다. 그는 또한 자기 형제들이 응징을 받게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황야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
그리고 인간의 역사에서 흔히 그렇듯이, 황야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말을 열심히 들었다.
2)앙헬 가니베트1865~1898
그라나다 출생/32세에 자살/"만일. 내가 국가를 개혁하라는 부탁을 받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그 무엇보다도 남녀의 관계를 개혁하려고 할 것이다.그러면 가족과 사회와 국가는 이내 스스로 개혁될 것이다."/나는 신을 믿지 않는 외톨이다.
3)미겔 데 우나무노
(100-101)우나무노는 현대 스페인의 가장 위대한 예언자적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폭발적인 힘과 산초 같은 기질을 지닌 고집 센 바스크 사람이며 고지식하고 열정적이다./우나무노의 메시지는 정치적. 혹은 민족적 이상을 초월하여 종교가 된다./우나무노의 투쟁의 중심은 신과 개인의 관계다./"삶은 논리나 게임이 아니다.그것은 종교다."
4)오르테가 이 가세트1883~1955
(102)마드리드의 신문발행인 가정에서 태어남/오늘날 스페인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이며,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그는 독일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며 유럽의 지혜와 명쾌한 정신을 열렬히 숭배하고 있었다. 그는 스페인이 유럽의 과학적인 방법을 채택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과학과 논리,체계적 작업과 최신기술, 유럽과의 긴밀한 접촉, 이런 것들이 스페인을 구하기 위해 그가 택한 길이었다.
(103-104)스페인을 이루고 있는 서로 다른 인종들:
1)바스크 인
고집이 세고 강인하며 자신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가장 먼저 정착한 신비로운 사람들이라는 거만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2)카탈루냐 인
실용적이고 근면하며 합리적이다.
3)갈리시아 인
포르투갈 국경에 거주하며 부드럽고 서정적인 기질과 상냥하고 공상적인 정신을 지니고 있다.
4)카스티야 인
옛 스페인의 하급귀족들과 왕자들이며 위대한 스페인 영광을 만든 용감하고 불쌍하며 자존심 강한 사람들이다.
5)안달루시아 인
따뜻하고 쾌적한 기후와 비애감에 깊이 물든 영혼들이다. 가장 뜨거운 순간에도 거세고 무질서하며 불 같으면서도 동시에 게으르다.
6)지중해 민족들
발렌시아의 연안에 살고 있으며 그들은 스페인의 레반트 사람이라고 불리듯이 쾌활하고 탐욕스러우며 겉치레를 좋아하고 나약하다.

(105)반짝이는 약간의 빛을 위해 암흑의 힘은 오랜 세월 동안 격렬한 소리를 내야만 한다. 앞으로 태어날 희망을 위해, 절망과 슬픔과 부정은 수 세기 동안 일해야 한다.

톨레도-엘 그레코의 도시
(106)톨레도는 엘 그레코의 정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내 마음 속에 나타났다.한쪽은 빛이 관통하고 다른쪽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어느 비잔티움의 신비주의자가 말했듯이, 냉담이 아닌 하느님의 광기의 출발점이며,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는 인간적인 노력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니코스는 엘 그레코[1541~1614.4.7]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그는 니코스와 同鄕인 그리스 이라클리온 사람 아닌가)
(107)사람의 어깨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개의 영혼이 앉아 있다.오른쪽 어깨에는 천사가, 왼쪽 어깨에는 악마가 앉아 있다. 그날 아침 나는 두 개의 영혼이 톨레도를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서로 말다툼을 벌이고 있음을 알았다.


(116)엘 그레코는 끊임없이 완고하게 전통적인 예술의 정전을 비난하면서, 오직 자신의 관점에 전념했다. 마치 기사가 칼을 잡는 것처럼 붓을 쥐고서 그림을 그렸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림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법칙이나 규칙이 아니다. 그림은 개척이다.그것은 영감이다. 절대적으로 개인의 에너지다."
(118)예술은 육체의 눈으로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영혼의 끊임없는 시선이 가시적인 이 세상 안에서 짐작할 수 있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다.
(119)예술의 목적은 단일성과 통일성을 보여주는 것이다.예술의 목적은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다.
(121)장인의 고통은 우리나 엘 그레코처럼 비옥한 전환기에 맹렬하게 분출된다.물론 그러한 창작자들은 신중한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미치광이로 여겨진다.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보다 24시간 먼저 안다면, 그는 24시간 동안 미치광이로 여겨진다.엘 그레코는 2세기 반 동안 미친 사람으로 여겨졌다.지금에서야 비로소 우리가 의식적으로 그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고, 그 결과 엘 그레코는 우리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우리가 찾으려 애쓰고 있는 새로운 균형을 이루게 되면, 엘 그레코는 다시 한번 잔잔하고 안정된 새 세대에게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그러면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굽이치는 리듬에 따라, 그는 다시 빛날 것이다.

코르도바
(125~126)무언가를 읽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신문을 읽는 사람조차 없었다.안달루시아 사람들의 눈에는 활기와 기교, 자발적인 문화가 담겨 있었다.지적인 호기심이나 고민 따위는 없었다.
(127)안달루시아는 인공수로로 가득한 정원이었는데, 거기서 쌀과 사탕수수 그리고 목화가 자랐다. 아랍인들은 땅과 나무와 꽃을 사랑했다. 그들은 동백꽃뿐만 아니라 재스민,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오렌지나무 그리고 대추야자도 처음으로 유럽에 가져왔다. 또한 철과 가죽세공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어떤 민족도 그처럼 유연하면서도 부러지지 않는 칼과 얇으면서도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갑옷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은 실크와 도자기, 사탕절임과 향수 제조에도 뛰어난 장인들이었다.
그런 정원들 사이에 앉아 성신은 장려되었고. 촉진되었다.그리고 서양의 아테네라는 코르도바에 둥지를 틀고서 행복한 노랫소리로 그곳을 장식했다. 코르도바 도서관은 40만 권의 장서와 그리스 지식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전문학자들이 있었다.
아랍의 철학자이며 코르도바의 위대한 법관이며 의학박사,천문학자,철학자,작가인 아베로에스는 말했다.
"보상의 희망이나 처벌의 두려움에 바탕을 둔 그 어떤 도덕적 체계도 인간이나 신에게 가치없는 것이다. 그것은 부도덕한 것이다."
그것은 아랍인들의 자긍심과 존엄성이었다. 그것은 아랍민족의 고귀함이었다. 무언가를 받기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두렵기 때문에 악을 피하는 것이 아닌 이타적인 불굴의 정신이었다.사람은 언제쯤이면 이런 사리사욕이 없는 정신 위에 미덕과 신념의 기초를 둘 수 있을까? 아마 결코 인간은 희망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128)여기 아랍 왕실의 궁전에서는 시인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비잔틴과 서유럽에서 시인들은 기생충이나 익살광대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왕의 친구였고 왕의 조언자였고 술친구였으며, 불멸의 지방을 정복한 그의 사병들이었다.
(132)메디나 아사아라--'레몬꽃의 도시'라는 뜻/술탄 아브드 알라흐만이 사랑하는 여인을 즐겁게 해주려고 지은 궁전 /이 지상낙원에는 6천3백명의 여자들과 3750명의 아이들, 그리고 1만2천명의 경비병들과 비단옷을 입은 내시들이 살았다.지금은 자취도 없다.

세비야---아랍 궁전 알카사르/세비야 대성당/호색가 돈 후안
(141)가끔씩 이방의 도시에서 홀로 방황하고 있을 때면, 나는 내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외친다. 이런 축복은 무엇일까? 내가 살아있다는 기적과 늙었다는 기적,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실 수 있고 그로 인해 완전히 다시 상쾌해지는 이 기적은 무엇일까? 배고프면 빵 한 조각을 먹을 수 있고, 그러면 뼈들이 기뻐하면서 기운을 되찾는 기적은 무엇일까? 기쁨이란 너무나 얽히고 설켜 있고 부족함 속에서도 너무나 편안하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는 것일까?
(150)돈 후안의 사랑법
돈 후안은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이나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다만 강도 높은 순간적인 기쁨을 찾을뿐이다. 그는 대담하고 관능적이다. 그는 절대로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다. 그는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않는다.이것이 그의 힘이다.
그의 고결함과 따스함은 자존심과 관능이 결합한 덕택이다.

그라나다--알람브라 궁전
(155)알람브라 궁전의 매력:
건축물과 음악의 일체감--아랍 건축물의 최후이자 최상의 노력은 모든 물질적 형태를 초월하는 것이다.그래서 가능한 한 벽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것을 호리호리한 기둥이나 아치로 대체했다. 아치는 영묘하게 물결친다.장식물들은 사상처럼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 된다.아랍의 음악가이자 건축가들은 빛과 공기와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156)알람브라에서 느낀 두 번째 최고의 감정은 기하학과 형이상학의 심오한 연관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158)알람브라에서 솟구친 세 번째 감정은 관능적인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160-161)도시의 외곽 멀리서 바라보면 알람브라는 정말로 거대한 요새같다. 이 튼튼한 성은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졌다.성벽의 두께는 2미터에 달했고, 한때는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총안을 모두 지키고 있었으며, 지하의 통로는 수송 장비로 가득했고 마구간은 말로 가득찼었다.하지만 내부는 달랐다.거대한 성의 섬세한 표면 위에 인간의 모든 즐거운 게임들--관능적인 것이건 지적인 것이건 간에--이 성벽을 전혀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그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투우
(171)모든 애호가들을 대표하고 영원히 황소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은 황소를 죽임으로써 이루어진다.여기서 죽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사랑의 결과다.신성한 결혼과 신성한 도살은 같은 것이다.진정으로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피와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죽음을 통해 사랑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단지 오늘날에는, 문명이 그런필요성을 덮고 감추어 침묵하게 만든 것이다.여기 지중해의 맨 가장자리에서, 그런 필요성들은 가장 단순하고 신비로운 방법으로 갑자기 다시 되살아난다.
(172)삶이란 사랑과 죽음이 벌이는 필멸의 싸움이며 돈키호테처럼 무시무시하고 필사적이고 용맹한 모험을 하는 것

돈키호테
(카잔차키스가 돈키호테에게 바치는 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