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방/애송시

문의 마을에 가서 -고은

맑은 바람 2009. 1. 16. 11:44

 

 

文義 마을에 가서 

-고은(1933~    )

 

겨울  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앉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1974 작)

 

 

***文義: 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 조문 갔다가 쓴 시.

이 시대의 진정한 시인. 그분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되는 날이 꼭 오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