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義 마을에 가서
-고은(1933~ )
겨울 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앉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1974 작)
***文義: 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신동문 시인의 모친상 조문 갔다가 쓴 시.
이 시대의 진정한 시인. 그분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되는 날이 꼭 오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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