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방/피정과 말씀

미리내 성지

맑은 바람 2009. 6. 5. 01:10

 

오월의 끝자락-마음 맞는 이들 끼리 '안성'으로 일일 여행을 떠났다.

종일을 함께 있어도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고 그렇다고 소 닭 보듯 무심한 것도 아니고-- 오랜 세월

함께해 온 벗들이 우려내는 깊은 장맛 같은 것이 감도는 친구들-

우리가 가진 종교는 제각각이어도, 목숨을 기꺼이 내 놓고 자신이 믿는 신을 끝까지 따른 조상들의

그 지조와 절개 앞에서 어찌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있으랴!

 

예수님의 수난에서 죽음까지의 사건을 나타낸 ‘십자가의 길 14처’를 지나 김대건 추모 경당에 닿았다.

 마침 안내하는 분이 미리내 성지와 김대건신부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소상하게 들려주었다.

천주교 박해가 심하던 때 신변에 다가드는 위험을 피해 깊은 산 속으로 들어온 신자들의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멀리 산 아래에서 보니 마치 은하수 같아 ‘미리내’란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고

전한다.

유교 사상이 지배적인 조선사회에서,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안드레아가 ‘天主만이 모든 이의

주인이시며 모든 이가 평등하다’고 역설했으니 그를 가만 두고 볼 정치인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는 죄인 중에서도 중죄인 취급을 받아, 잘 안 드는 칼로 7번씩이나 내리쳐 숨이 끊어지게 하는

지독한 형벌을 받았다.

유해가 새남터 처형장에서 이곳에 모셔져 오기까지 그 순례길이 피눈물의 여정이다.

새남터 모래 속에 14일이나 방치되어 있는 것을, 안성 미리내의 이 빈첸시오가 교우들과 같이 시신을

옮겨 미리내 산중에 안장했으나, 지금은 <서울 가톨릭대학 신학부 성당> 제대 아래 모셔져 있고 다만

김대건 신부의 턱뼈만이 지어진 지 103년 되는 <성요셉 성당> 제대 아래 모셔져 있다.

조심스레 다가가 무릎 끓고 바라보노라니

 “천주를 위하여 나는 죽어갑니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여러분도 죽은 후 행복을

얻고자 생각하시면 천주교 신자가 되십시오.”

하고 담담히 말하는 그 모습이 또렷이 보이는 듯하다.

 

바우덕이 남사당 풍물놀이패의 사연과 함께  ‘안성’의 잊을 수 없는 정경이었다.

                                                                                  2009. 5. 30 (토)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마음이 착한 이에게 평화~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

 

 지상의 고난 끝내고  영원한 평화에 드심

 

<십자가의 길> 제 1처-체포 당하심

 

 제 2처-십자가형에 처해지심

 

 제 3처-십자가를 지고 가다 넘어지심

 

 제 4처-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만나심

 

 제 5처-키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들어줌

 

 제 6처-베로니카, 예수님 얼굴을 닦아드림

 

 제 7처-예수님, 두 번째로 넘어지심

 

 제 8처-예루살렘 여인들, 예수님을 보고 눈물 흘림

 

 제 9처-예수님, 세 번째로 넘어지심

 

 제 10처-옷을 벗기우심

 

 제 11처-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히심

 

제 12처-십자가에서 돌아가심

 

 제 14처-무덤에 안장되심

 

103년 된 <성요셉 성당>

 

성당 정면의 모자이크 십자가가 아름답다

 

 성요셉 성당 내부

 

 제대 아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 일부가 안치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