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늘 저를 일으켜주시고 제대로 살게 하십니다. 오늘도 제 일상의 자리마다 당신이 제 곁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전형적인 가을 날씨-좀 찬 느낌은 들지만 이제 물들기 시작한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전국여성백일장>이 개최되었다.
10시에 개회식을 하고 이어 오늘의 글제가 발표되었다.
‘눈썹, 소문 ,바가지, 쉼표’-어느 하나도 만만치 않은 글제다.
다들 약간은 당혹스런 표정들-
난 우선 좋은 자리부터 찾았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다 보니 건물 뒤편 양지바른 풀밭에 이미 몇 사람이 자리를 펴기 시작했다.
글은 잘 써도 그만 못써도 그만- 하루를 문학소녀였던 이들과 함께 여기저기 벤치에 혹은 풀밭에 삼삼오오 앉아 흘러가는 구름도 보고 귓전을 스치는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일- 얼마나 오래 전부터 누려 보고 싶었던 순간이던가
빈 골판지 상자를 하나 얻어서 널찍하게 펴고 정좌한 후 심호흡을 하며 생각의 실타래를 풀었다.
어떤 제목이 주어져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은 엄마 이야기로 생각을 몰아가다 요즘 엄마의 모습이 바로 休止符號를 찍은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제목이 결정됐다. ‘쉼표’를 글제로 하면 되겠다.
주어진 시간은 3시간-한 시간 남짓 생각을 정리해서 쓰고 남은 시간에 원고지에 옮겨야 한다. 시간 안배가 중요한 관건이다. 수필은 일단 열장을 넘겨야 하니까. 결코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본격적인 원고정리를 위해 장소를 옮겼다. 바로 뒤쪽으로 조용한 카페가 있었다. 아직 손님이 들 시간이 아니어서 친절한 대접을 받으며 한갓진 자리를 골라 앉아 원고지에 옮겨 쓰기를 시작했다.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17장을 쓰는데 한 시간 남짓-10분을 남겨두고 원고를 제출했다.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한 연후의
만족감--
시상식까지는 서너 시간이 지나야 하고 특강은 듣고 싶은 생각이 없고 혹 입상권 안에 들더라도 최고상
이야 내 차지가 될까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행사장을 벗어났다.
볼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실 4시부터 은근히, 혹시나 하며 전화를 기다렸다. 바로 전화를 받으니 여자 분의 목소리가 칼칼하게 들려온다. 이름 확인을 하더니,
“아니, 오늘 산문부 장원을 하셨는데 어딜 가 계세요? 지금 식이 다 끝나가고 있는데--, 빨리 오세요.”
내 귀를 의심했다.
‘장원이라니, 그런 건 나하고 상관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장원이라니--’
옆에 앉아있던 진이가 더 흥분한다. 그이와 강이에게 전화를 했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아르코미술관에 당도하니 나이 지긋한 여자분과 젊은 여자분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이가 나타나고 뒤이어 강이가 백합꽃 다발을 들고 뛰어왔다. 역시 젊은아이 머리 돌아가는 게 다르다고 진이랑 얘기하며 웃었다. 낯선 두 분은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하더니 <에세이 플러스>에서 오신 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오늘 장원에 든 사람은 '에세이 플러스'에 자동으로 등단이 된 거라고 거듭거듭 축하의 인사말을 한 후 당선 소감과 약력을 작성해서 보내달라는 부탁을 하고 헤어졌다.
아쉬운 채로 진이, 강이, 그이와 기념 촬영을 하고 발길을 돌렸다.
작가의 꿈이 이루어진 날이다.
(2007. 10. 17)
아들의 축하 꽃다발을 받고
에세이플러스 박상주회장님의 축하를 받으며
마로니에 장원작으로 에세이플러스 신인상 수상(등단)
수상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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