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초라니 줄방울 던지는 듯한 저를 풍류(風流)꾼으로 만드신 선생님께

맑은 바람 2009. 7. 1. 01:31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11반 박*윤입니다.

 

그동안 죄송스러웠습니다.

선생님께선 매명(每名)하에 정성으로 가르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또 초라니 줄방울 던지는 듯한 저를 풍류(風流)꾼으로 만드시고

조박(糟粕)이 없는 저를 지식이 많은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게다가 저희에게 피와 살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버릇없던 것은,

4교시 끝나는 종이 울리면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나갔던 상주 제청(祭廳)에 달려들 듯 급식

먹으러 간 것, 나랏님 거동과 같은 선생님이 교실에 오실 때 수업준비가 안 된 것 또 수업시간에

딴 짓한 것 들입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께선 교직원 식당에서 밥맛이 없어 생쌀 내가 나고,

좋아하시는 장이 나와도 날 장내가 나고, 목이 말라 물을 드셔도 해감내가 나고,

샐러드를 먹어도 풋내가 나십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우리를 하해(河海) 같은 아량으로 용서하셨으니 천복(天福)을 받아 무병장수하실

것입니다. 만수무강을 빌며 그럼 이만 안녕히 계십시오.

 

***처음엔 어리둥절하였다가 웃음이 터졌다.

오십 넘은 우리들도 잘 쓰지 않는 표현들을 구구절절이, 적재적소에 골라 쓴 아이에게 감탄했다.

 

이 학생은 평소 전혀 두드러진 데가 없고 아주 평범한 아이로 보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책을 펴 놓고 이 편지를 썼던 것 같다.

 

위의 識字가 들어간 부분은, 중학교 2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 중, 설화 ‘바리데기 바리데기 바리공주야’와

판소리 ‘흥보가’에서 인용한 것들이었다.

 

편지를 읽으며 잠시 행복했다.

(2003.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