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선 물

맑은 바람 2010. 3. 8. 22:28

 

  어제 친구가 준 고구마를 구워 먹으려고 신문뭉치를 풀었다.

신문지를 펼치는 순간 마음이 싸아 해 왔다. 고구마는 표면이 여기저기 패이고 완전히 썪은 것들도

있었다.

수세미로 문지르고 상한 부분을 칼로 도려내다 보니 슬슬 심사가 사나워졌다.

‘뭐야, 실컷 먹고 남은 거 버리자니 아까워서 들고 온 거란 말인가?’

그러면서도 ‘특별히 너 줄려고 가져왔다’길래 난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뿌듯해 하며 받았는데.

그러나 뭉그러져 가는 고구마를 보면서 속이 상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선물이라면 값나가는 것은 관두고라도 받는 사람이 고마운 마음이 들게는 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맘을 상하게 하는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로 인해 그동안 쌓인 정에 금이 갈 수도 있다.

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주려는 물건에 집착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 친구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결코 날 서운하게 할 생각이 있는 친구는 아닌데--

 

 속상한 중에 어제 작은애로부터 받은 선물이 생각났다.

아들은 밥을 먹다말고 “엄마 생신 선물!”하며 포장지에 싼 걸 건넨다. 앙증맞게 예쁜 디카였다.

“지금 갖고 있는 것도 쓸 만한데, 뭘 또 샀어?”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제 엄마가 여행 다니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 디카가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살면서 가끔씩 선물을 주고받지만 내게 큰 기쁨을 안겨 주곤 한 것은 주로 작은애의 생일 선물들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골판지에 꽃무늬 종이를 바르고 쇠고리 장식까지 달린 악세사리 서랍장을

직접 만들어 주었고, 엄마 출근 도장 넣어 가지고 다니라고 길이 10cm도 안 되는 알록달록한 도장 지갑을 사 오기도 했다.

 제가 돈을 벌면서부터는, 엄마 직장으로 큼직하고 아름다운 꽃다발을 보내와 동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고, 성당 열심히 다니라고 십자가 금목걸이를 해주기도 했다.

 

 어느 하나 제 엄마 맘을 살피지 않은 게 없다.

그래서 수십 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 그것들을 간직하거나 몸에 지니고 있다.

값의 고하를 떠나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맘이 담긴 귀한 선물들이기에.

                                                                                  (2010.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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