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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성전탈환의 시나리오

맑은 바람 2010. 5. 31. 10:44

 

 

 

십자군 전쟁-성전탈환의 시나리오

조르주 타트(프랑스 콩데 대학 고대사 교수, 북부 시리아고고학 사절단 단장)

 

 

어제 <로빈후드>를 보았다. 셔우드숲 속의 활잡이가 아닌 십자군 전쟁의 용병 로빈을--

눈이 번쩍 띄어 각별한 흥미를 가지고 보았다.

세계사에 무지했던 내가 이즈음 부쩍 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연초에 스페인여행을 다녀온 뒤부터다. 그곳엔 유럽의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웠던 이슬람 유적들과 유대인 마을들이 많이 있었다. 그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이 책이 어느 정도 답을 일러준다.

 

-십자군 원정 직전 비잔틴제국은 약화되어 갔으며 이슬람제국은 분열되어 있었다.

-서유럽의 문화는 제후들의 궁정과 수도원 안에서만 향유된다.

-11세기에 왕권에 대립되는 기사들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방어와 공격용 무기를 갖춘 전쟁 전문가들이 된다. 그들은 남성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조상들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특권계급으로 ‘자진해서 문맹인 채로 지내는데’ 이는 정신의 도야가 그들의 용기와 힘을 퇴화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武力의 필요를 절감하면서도 武人들을 경시해 왔던 까닭이 그들이 대체로 글을 멀리한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역사가 깊다.

 

-교회는 전투를 기독교화하고 기사도에 종교적 성격을 부여하여 궁극적으로 이교도에 대해투쟁을 벌이도록 유도한다. 그것이 바로 1095년의 십자군 결성으로,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이교도로부터 예루살렘 탈환 명령이다.

 

그들은 싸움터에서 죽더라도 영광스럽게 구원받을 기회를 얻는 셈이고 그들의 사명을 완수하면 죄의 사면을 받을 수 있다고 믿고 기꺼이 聖地로 달려간다. 그러나 애초의 순수한 사명인 聖殿 탈환의 임무는 뒷전이고 그들은 가족들까지 모두 데리고 보다 살만한 곳으로 이주할 목적으로 길을 떠난다.

입성한 도시마다에서 살육, 방화, 노략질, 약탈, 파괴를 일삼아 현지인들을 몸서리쳐지게 만든다. 여덟 차례의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 지역 국가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놓았고 이방인에 대해 경계하고 싫어하게 된 계기를 마련했다.

 

초기의 십자군의 부분적으로 승리하나 뒤로 갈수록 이슬람 세력이 결집함에 따라 십자군 세력이 약화되어 더 이상의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한다. 이 전쟁의 영웅들은 사자왕 리처드, 성왕 루이 정도고 이슬람의 장기, 누레딘, 살라딘 같은 인물은 교과서에서 만날 수 없었던 인물들로 현대의 이슬람 지도자들의 모범이 되고 추앙 받는 인물들이다. 그 관대함과 기사도적 행동과 뛰어난 지략과 용병술로-- 살라딘의 용기와 신의는 적군으로부터도 감탄과 질투를 불러 일으켰다.

 

찬란한 문명의 중심지 오리엔트와 미개 상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서유럽의 충돌이 십자군 전쟁이다.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죽여야 살리라’(전쟁 참가자는 <전대사>의 은총을 받는다고 선전)고 외치며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1291년 8월 14일 맘루크조에 의해 종식된다. 200년간의 야만의 시대 동안 씻을 수 없는 汚名과 다시는 회복하기 어려운 종교적 갈등을 남긴 채--

 

혹자는 말한다.

이 세상에 종교가 없었더라면 종교 전쟁으로 인해 죽는 사람도 훨씬 적었을 거라고.

(2010. 5.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