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한두 번 사다먹는 장어를 사러 광장시장엘 들렀다.
종로 5가 버스정류장 부근 좁은 골목 끝에 <은하 장어>집이 있다.
가게 옆에는 아저씨가 북어를 뜯고 앉아 있다. 늘 같은 풍경으로 그 자리에 그림같이
앉아 북어를 뜯는다. 마냥 뜯은 북어 채는 하나하나 포장해서 팔려고 쌓아 놓는다.
광장 시장은 역사가 오랜 시장(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상설시장)이라
뜨내기 손님보다는 20년 30년 단골이 주 고객이어서 물건 값이 좀 비싼 대신 품질이
좋다.
“아주머니, 장어 좀 주세요.”
뭔가에 정신을 팔고 있는지 얼른 못 듣는다. 옆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아, 장어 달래잖아요.”
여름철 수요가 급증해서인가 1kg에 37,000원이다. 작은 거 두 마리만 달라고 했다.
요리 조리 빠져나가는 미꾸라지보다 더한 놈들을 서두르지도 않고 느린 동작으로
한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쇠채에 건져 올린다. 두 마리가 올라왔는데 한 놈은 까맣고
하나는 잿빛이다.
“얘는 물에 너무 오래 놔둬서 허옇게 된 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말해놓고도 싱거운 소리를 했다 싶다. 아니다 다를까
“아, 껌둥이 종자를 물에 오래 놔두면 흰둥이가 된답디까?”
나는 깔깔 웃는다. 아주머니도 싱겁게 웃는다.
단칼에 머리를 잘라내고 몸을 가볍게 두 쪽으로 갈라 뼈를 발라낸다.
몸뚱이 핏물을 휴지로 박박 닦아내고 있는데 한켠에서 잘려나간 머리통이 피를
꿀꺽꿀꺽 토해내며 꿈틀거리는 게 신경 쓰인다.
“이제 몸에 배서 덜 끔찍하지요?”
“마찬가지지, 뭘~ 잔인한 일야. 그래서 매번 뜨면서 ‘나무아미타불~’해.
어떤 남자가 그러더라구~. ‘아주머니는 천당 가긴 틀렸네요.’
근데 나도 염라대왕한테 할 말 있어. 생명을 주셨으면 살 도리도 갈쳐 줘야지,
피난 내려와서 당장 굶어죽게 생겼는데 어떡혀~ 그래서 잡은 게 이거고 어쩌다보니
여적지하는 거지.”
“자녀들 다 시집 장가 보내셨을 테니 쉬실 법도 한데~”
“아냐, 늙어두 일하문서 돈두 만져보고 해야 안 늙어. 전에 같이 장사하던 사람들이
접때 놀러왔는데 다 나보다 늙었어. 내가 질 젊어.”
웃는 얼굴이 환하고 당당해 보인다.
“덧신도 예쁜 걸 신으셨네요. 못 보던 디자인이네요.”
“누가 선물로 줬어.” 흐뭇한 표정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운데 피를 모두 뺀 두 마리 장어는 흰 몸뚱어리만 스티로폴 팩에
가지런히 담긴다.
비닐봉지를 건네주는데 연두색 메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아유, 메니큐어도 젊은 애들처럼 가운데만 예쁘게 칠하셨네요.”
“노상 물을 만지니까 손톱이 약해져서~“
아주머니의 행동거지가 점잖고 아등바등하지 않는 태가 마음에 닿아 이곳에 오면 괜히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 놓는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 사이에 느끼는 각박함이 없다.
다른 시장에 비해 어수선하지 않고 오래된 가게들이 지니는 안정되고 정갈한 분위기가 좋아서
시간 날 때 가끔 둘러보게 되는 광장시장-<은하 장어>집의 모습이다.
(2010. 7. 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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