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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月下)의 마음/김향안 에세이/ 환기미술관

맑은 바람 2010. 8. 24. 18:15

 

-별들은 많으나 사랑할 수 있는 별은 하나밖에 없다-

-아름다운 음악과 아름다운 그림은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아름다운 것은 슬프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감정은 슬픔이기 때문에-

-사랑이란 믿음이다. 믿지 않으면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 없다. 믿는다는 것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는 거다. 곧 知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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首丘初心이라는데 왜 그들은 머나먼 이국땅(뉴욕 켄시코 묘지)에 영원히 잠들었을까?

조국을 오래 떠나있다 보니 그리움도 없어진 걸까?

 

우리 시대의 기린아 이상과 김환기의 여인-그녀는 어떤 매력으로 그 두 사람을 사로잡았을까?

이 궁금증이 책을 펼치게 했다.

 

우선 시대를 앞선 그녀의 사고방식에 놀랐다.

전실 자식이 셋이나 있고 홀시어머니까지 있는 남자(김환기)를 그녀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딸린 식구들을 모두 데려와 한집에서 살게 했다. (자신도 흠 있는사람이라서?)

집에 땔감이 떨어져 난감하게 됐을 때 그녀는 골방 속에 잘 모셔두었던 김환기의 그림들을

몽땅 꺼내다 일주일치 땔감을 만들었다-감히 흉내낼 수 없는 이 괴력!!

6.25동란으로 소중한 혈육을 잃고 애지중지하던 값진 골동품마저 모두 잃고 상실감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폐허 속에서도 밝은 미래를 꿈꾸었다.

‘내가 바라는 우리나라’의 청사진을 그려본 것이다.

그날의 간절한 소망들이 지금 현실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한강변 개발, 무수한 한강 다리, 곳곳의 녹지대, 거미줄처럼 뻗어간 지하철,

도처의 백화점, 영화관, 각 가정의 가스 전기 시설, 맞벌이, 우리의 것이 세계로-

 

그러나 한 가지, “젊은 여성을 구라파에 보내 고도의 지성과 취미, 생활의 검소를 배워

오도록 하면 좋겠다.“는 김향안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구라파로, 미대륙으로 유학이나 여행하고 온 여성들이 부지기수이나 대다수의 젊은 여성들이 외적 허영-첨단 유행 따라잡기, 너도나도 성형 수술의 일상화 -에 빠져 ‘고도의 지성과 검소’와는 거리가 먼 게 현실이다.

1960년 만해도 외국에 나가면 우리나라의 초라한 처지가 비교되어 위축감을 느끼곤 했으리라. 그러나 50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랑감이 생기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956년 파리에서 10평이 될까 말까한 집에서 살면서도 그들은 행복했다.

행복은 사는 공간의 크기에 있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다만 마티스가 장식한 성당이 있는 '생 폴 드 방스'에서 살고 싶다는 귀절에서는 나도 그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녀는 똑똑하고 외국어를 잘하고 자신의 능력이 뛰어났음에도, 주로 樹話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그를 위해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번역하고 타이프 치고 심부름을 했다.

그밖에 더 중요한 일은 화가의 감정 콘트롤을 하는 것이었다.

에너지의 과잉을 견제해야 하고 기고만장하려 드는 기분주의를 적당히 조절해야 했다.

그녀 없는 김환기는 생각할 수 없다.

김환기가 빛남으로써 그녀의 존재가 더욱 부각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 62세로 수화는 향안을 떠났다. 너무 무리했었다고 향안은 후회한다.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처음의 의문점-왜 이국땅에 뼈를 묻었나? 수하는 귀국할 의향이 있었으나 갑자기 발병하고

미처 돌아올 상황이 못되었다. 향안은 당연히 그의 옆에 묻히고 싶었을 테고--

 

수화가 간 지 10년 가까이 되도록 그녀의 亡夫歌는 계속된다.

수화는 갔지만 향안은 수화를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고독한 인간을 구원해 주는 면에서 종교와 글쓰기는

 역할이 비슷하다.

 

한편 <환기 미술관>이 잉태된 계기는, <퐁피두 미술관>에서의 환기작품 회고전이 성공적이었음에도 어쩐지 남의 집 빌려서 잔치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술관을 만들고 수화의 그림들을 가까이 두고 살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녀는 우선 집을 정하고 미술관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부암동 <환기미술관>이 그 열매다.

 

내가 궁금하게 여긴 이상에 관한 얘기가 뒤에 나온다. 단지 3개월 결혼 생활을 하고 이상과사별한 아내 변동림은 김환기의 아내 김향안이 되었다. 달라진 이름만큼이나 그녀의 역할은 달랐다. 변동림이 좌충우돌하는 격변기를 살았다면 내면이 성숙되고 자신의 재능이 빛을 발하게 된 것은 김환기의 아내가 된 후부터였던 것 같다.

 

김향안의 글은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다. 다만 화가 김환기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흥미를 충족시켜 주었을 뿐이다. 이상과의 결혼생활 부분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걸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할 이유가 뭔가?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 예술가의 아내로서, 훌륭한 내조자로서 살았음에 틀림없는데-- (2010. 8. 24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