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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에세이 /환기미술관

맑은 바람 2010. 8. 29. 00:51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수화 김환기는 윗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인용한 그림으로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어디서 무엇이 되어~>

 

“우리 한국의 하늘은 지독히 푸릅니다. 하늘뿐 아니라 동해바다 또한 푸르고 맑아서 흰 수건을 적시면 푸른 물이 들 것 같은 그런 바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결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백의민족이라 부르도록 흰빛을 사랑하고 흰옷을 많이 입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사는 우리들은 푸른 자기, 靑瓷를 만들었고 간결을 사랑하고 흰옷을 입는 우리들은 흰 자기, 저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1957년, 그가 프랑스 니스에서 개인전을 할 때 방송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중학국어>교과서에 실린 이 글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있다. 그는 실제로,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조선백자 항아리를 사들이는데 큰돈을 아끼지 않았고 늘 곁에 두고 사랑했으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작품들에 청자빛을 사용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세계 미술계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프랑스로 미국으로 14년간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고향의 바다와 백자 항아리와 밤하늘의 별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

 

극도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고국에 두고 온 세 아이들을 걱정하고 연연해했지만 내가 아쉬운 것은, 고향<안좌도>이야기가 거의 없는 점이다.

언젠가는 김환기의 고향 안좌도에 가서 그의 생가를 돌아보며 그가 추억하고 있는 것들을 그려 보려 했으나 그는 고향 얘기가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그라고 없겠는가?

 

그는 죽기 일 년 전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이 60에 벌써 이가 다 망가지고, 일기 도처에 머리와 몸이 무겁다든가, 쓰러질 듯 기운을 못 차리겠다든가 하는 기록이 보인다. 그가 가던 해에는 3월부터 병색이 역력하고 드디어 1974년 7월 12일 큰 수술을 기다리는 걸로 일기가 끝난다.

 

7월11일 일기에서 그는 마지막 심정을 토로했다.

“지금 나는 아무런 겁도 안 난다. 평안한 마음이다. -鳩鳩森亭에 나오면 하늘도 보고 물소리도 듣고 불란서 붉은 술에 대서양 弄魚에 인생을 쉬어 가는데 어찌타 사랑이 병이 되어 노래는 못 부르고 목쉰 소리 끝일 줄을 모르는가”

 

열악한 환경과 가난이 그의 명을 재촉한 것 같아 안타깝다. 안목 있는 후원자의 재력이 밑받침되었던들 그리 서운히 60 고개에 생을 내려놓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나 그는 절대적 후원자 김향안이라는 여성을 만나 입지를 넓혀 나갈 수 있었다. 프랑스로, 미국으로 그녀는 <월하의 마음>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수화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모두 쓴 사람이다. 수화가 먼저 가고 향안이 남아, 세계 각지에 흩어진 그의 그림을 거두어 <환기미술관>에 소장한 것은 또 그 얼마나 불행 중 다행인가.

 

김환기의 말과 생각:

-(향안에 대해) 아내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먹을 것이 있든 없든 항상 명랑하고 깨끗하다. 아내는 쓰고 싶은 소설을 못 써도 불평이 없다. 아내는 낙천가다. 아내는 쓰임새나 인정에 헤픈 사람이다. 아내는 古翫品을 좋아한다. 아내에겐 절박 상태가 없다. 입을 것이 없어도 내일 아침거리가 없어도 잊은 듯이 잠잔다. 아내는 치밀하다. 그래서 나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땐 아내와 의논을 하면 얻는 것이 있다.

 

-일을 하며 음악을 들으며 혼자서 간혹 울 때가 있다. 음악 문학 무용 연극-모두 다 사람을 울리는데 미술은 그렇지가 않다. 울리는 미술은 못할 것인가.

 

-나는 술을 마셔야 천재가 된다. 내가 그리는 線, 하늘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江山--

 

-똑같은 세월인데 살아갈수록 세월은 화살 같다.

 

-피카소가 죽었다. 태양을 가지고 가버린 것 같아서 멍해진다. 세상이 적막해서 살맛이 없어진다.

  (2010. 8. 29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