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시문학계의 巨峰 정지용-
60년대 후반에 국문학을 공부한 나도 정지용의 이름은 강의실에서만 들을 수 있었다.
反共을 國是의 제일로 삼던 시절, 그는 월북작가(?)였기때문에 우리는 그의 시들을 드러내놓고
공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대의 비극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봇물처럼 터진 월북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온 것이
정지용이었다.
'남에는 서정주, 북에는 정지용'이라는 말이 그때부터 공공연하게 회자되었다.
청석교 건너 <정지용 시인 생가>가 보인다
소나무보다는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더라면~
초가집과도 잘 어울리는 감나무-아이들 간식거리, 젯상 음식, 까치밥
싸리나무로 엮은 사립문-아예 반쯤 열어놓고 살았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하는 아이들을 위해
시인 친구들
우물 곁에서 물 한 그릇이라도 마실 수 있다면 더 좋을텐데--
추우세요?
정지용 (1902.5.15~1950 납북)
시는 한 개에 얼만가요?
<우편취급국> 지붕 밑에도 시가 있다.
생태해물탕과 두부전골을 먹었던 식당- 전 주인의 雅趣가 느껴진다.
마트에도 <조찬> 의 시 한 줄이--
정육점 벽에도 '얼룩배기 황소가~' 씌어 있다.
옥천읍 죽향리 하계마을은 온통 시인의 마을이다.
얼마전 고창의 <미당 문학관>을 다녀오고 이번엔 정지용 시인을 만났다.
그들의 文氣를 흠뻑 받았으니 나를 포함해서 글쓰는 이들이 한결같이 염원하는
<단 하나의 명작>이 탄생되는 그날까지 붓끝을 더욱 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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