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충청도

<육영수 여사 생가> 충북 옥천

맑은 바람 2010. 11. 21. 15:54

 

60~70년대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의부인 육영수여사에 대해 아련한 아픔과 함께

그리움을 떠올린다.

흔히 '학'에 비유되기도 했던 여사의 기품있는 자태와 넘치지 않는 미소, 의연한 태도는  남편의 허물마저

덮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혼삿말이 오가던 1950년-

멀리 부산서 옥천 집을 찾아왔다가 돌아가기 위해 섬돌에서 구두 끈을 매는 박소령의 뒷모습을, 그녀는 문

뒤에서 조용히 살폈다.

두 사람의 혼사를 반대하는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사람의 앞모습은 속일 수 있어도 뒷모습은 속일 수 없습니다. 저는 그분의 뒷모습을 보면서 왠지 든든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과 결혼하겠습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박소령과 혼인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어려움 모르고 풍족하게 살다가 갑자기 온달의 아내가 된 평강공주는 그 남편을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다.

 

그러나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총탄에 맞아 어이없게도 49세의 나이로  스러졌다.

든든한 후원자이며 자랑이었던 아내를 잃은 박대통령의 비통함과 그리움은 더없이 애절하다.

        내년 7월이면 저 못에도 연꽃이 무성하겠지?

 

 아직은 외관만 갖추어졌을 뿐 살림이 구색을 갖추지 못했다.

 

  해설사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우리 친구들

 

   집안에 들여놓은 화장실

 

  연자방앗간-부친이 미곡상을 했다.

 

 대부분 단칸방에 살던 시절-독방을 쓸 수 있다는  건 서민들에게는 꿈이었다.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번이나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
그 우아한 모습 그 다정한 목소리
그 온화한 미소 백목련처럼 청아한 기품
이제는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잊어버리려고 하면 더욱 더

잊혀지지 않는 당신의 모습
당신의 그림자
당신의 손때
당신의 체취
당신의 앉았던 의자
당신이 만지던 물건
당신이 입던 의복
당신이 신던 신발
당신이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

"이거 보세요" "어디계세요"
평생을 두고 나에게
"여보" 한번 부르지 못하던
결혼하던 그날부터 이십사년간
하루같이 정숙하고도 상냥한 아내로서
간직하여온 현모양처의 덕을 어찌 잊으리.
어찌 잊을수가 있으리.

1974년 9월 4일(수) 박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