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활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든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석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조선지광> 65호 1927년 3월 작)
***한때는 월북작가로 대학에서조차도 작품을 대하기 어려웠던 정지용 시인-
그가 어디에 살든 두고 온 고향집과 고향집 앞을 흐르던 실개천을 잊을 수 있을까?
늙은 부모를 고향집에 두고 온 모든 이의 마음의 고향인 이 시를 나지막이 읊조리는
순간 울컥하고 가슴을 치미는 슬픔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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