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전화가 왔다. 등록되지 않은 전환데 목소리가 귀에 익다.
대뜸 누구 아니시냐고 이름을 말하려다가 잠자코 있는데 전혀 뜻밖의 사람이었다.
20년 전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김선생님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목청을 높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금세 마음의 거리가
좁혀진다.
김선생님은 당시 학생부장을 맡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 ‘떴다’ 하면 그 존재만으로도 아이들을 평정시켰던 여느 학생부장과 달리
선생님은 온유함과 관용으로 아이들의 성정을 달랬다.
아이들이 제일 꺼리는 학생부-
늘 혼나러 온 아이들 때문에 시끌시끌했던 교무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선생님은 지금 춘천에 내려가 살고 있는데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잘나가고 있다’고 했다.
무얼 하시냐니까, 조그맣게 농사도 짓고 틈틈이 글쓰기를 해서 몇 년 전에 시인으로,
수필가로 등단하신 후 가끔 군부대 특강도 나가신단다.
참으로 ‘잘나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고 맞장구를 쳐드렸다.
같이 근무할 당시는 수학을 가르치셨는데--
통화 말미에 불원간 춘천엘 한번 꼭 놀러오라고 했다.
짧지 않은 날을 살아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만남이 있었다.
그러나 수화기 저편의 목소리가 단번에 반가움을 실어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유쾌한 아침이었다.
싱그런 녹음이 짙어가는 이 계절에 경춘선을 한번 타야 할까 보다.
(201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