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치매지원센터에서 남편 앞으로 <치매조기검진> 안내서가 날아왔다.
97세 시아버지가 지금 치매환자로 사시고 남편도 최근에 일련의 행동들이 심상치 않아 내심 걱정을 하고 있다. 변기에 물을 내리지 않는 일, 화장실에 불을 켜 놓은 채 나오는 거, 걸핏하면 무얼 찾는다고 온 집안을 뒤집어 놓는 거, 지갑을 놓고 정류장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일 등--
반가운(?) 마음에 어서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니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얼마 후 내 앞으로도 무료 치매 검진 서비스 안내장이 날아왔다.
잘됐다 싶어 같이 가자며 인근에 있는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으로 갔다.
소극장에는 안내원 및 검사요원 3명이 파견 나와 있었다.
잠시 대기하는 동안 주소 및 연령, 학력 등 기초조사를 한다. 검사 동의서에 사인까지 하고 대기한다.
남편이 먼저 불려나가고 기다리고 있는데 바로 앞쪽에서 검사를 받는 노인이 귀가 잘 안 들리는지 큰소리로
대답을 하니까 검사요원은 질문내용이 새어나갈까 봐 작~게, 조그만 소리로 말하라고 계속 주의를 준다.
몇 가지 정보가 본의 아니게 귀에 들어왔다.
저런 걸 다 묻나 생각하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른다.
오늘이 며칠이냐, 무슨 요일이냐, 지금 이곳이 어디냐-- 대답하기도 쑥스러운 질문을 하더니 단어 몇 개를
열거하고 잠시 다른 얘기를 하다가 아까 열거한 단어를 말해보란다.
조금 긴장됐다. 이어서 다섯 음절 정도의 단어를 말한 후 거꾸로 말해 보란다.
아까보다 더 긴장된다.
대답을 척척 잘 하신다는 칭찬을 들으며 끝까지 착한 학생처럼 대답을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만점 맞으셨네요.”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몇 점이래?”
“응, 그건 모르겠구, 하나만 더 틀리면 재검사 대상자가 된다나?”
“뭘 틀렸는데?”
“아, 날짜와 요일을 묻잖아-그걸 누가 기억하구 지내나?”
그렇다. 젊은이들도 필요할 때나 휴대폰 보고 날짜를 확인하지, 누가 그런 걸 기억이나 하나?
현대인의 생활은 이제 기억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전화번호나 약속은 수첩이나 휴대폰에 기록하고, 거리에 나가면 네비 양이 길 안내를 척척하니 지도가 필요 없고 ‘길치’도 없다. 물건을 사도 현금 대신 카드를 사용하니 암산이 필요 없고, 병원 예약 날짜는 해당 일에 문자가 오고--
문명의 利器가 치매환자를 量産한다.
20년 후면 둘 중의 하나는 암이거나 치매 환자가 될 거란다.
끔찍한 것은 물론 치매다. 본인만 모르는 채 주위 사람들 모두를 불행에 빠트리는 고약한 병-
헬렌 니어링 부부처럼 문명의 이기를 멀리하고 원시의 자연에 묻혀 살아야 할까 보다. (201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