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움직여야 산다.

맑은 바람 2011. 7. 24. 20:45

 

엊그제 밤 화장실에서였다.

두리 소변 냄새가 하도 심해 EM을 좀 뿌릴 양으로 패트 병을 집어 드는 순간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꼼짝할 수가 없다. 소변은 급한데-- 천길 가듯 간신히 화장실 문턱을 넘어서 방으로 기어 나와 휴대폰으로 저쪽방의 남편을 불렀다.

뒤쪽에서 겨드랑이를 부축 받고 간신히 변기에 앉았다. 용변 후 남편이 앞쪽에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는 순간 또 외마디 비명이 터진다. 왼쪽 허리 부분의 신경 다발이 엉킨 것 같은 기분이다.

방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 눕기까지의 고행은 또 어떠한가?

그래서 나이 들면 침대를 쓰나 보다. 무거운 이불을 개서 올리는 일도 점차 쉽지 않을 것 같다.

잠은 완전히 달아나고 멀뚱히 누워 있으려니 한심하고 기가 찬다.

119를 부를까?

왕진을 부탁할까?

전에 다니던 한의원에 전화를 했다. 꼼짝을 할 수 없는데 잠깐 다녀가실 수 있느냐고. 저쪽에서는 병원이 비어서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신다. 전화를 끊고 나니 얼마나 무모한 부탁이었나 생각됐다.

 

배는 고파오는데 9시가 넘어도 아무도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건넌방의 남편을 또 휴대폰으로 부른다.

여보, 허리 아픈 사람은 배도 안 고픈 줄 알아?”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다.

어엉, 그랬구나. 내 얼른 차려다 줄게.”

그 사이 난 다시 몸을 일으켜 보려 안간힘을 쓴다. 팔에 힘을 주고 상체를 천천히 들어 올린다. 다시 무릎에 힘을 주고 팔을 뻗쳐 의자를 잡는다. 유리그릇 다루 듯 조심조심 몸을 일으켜 의자에 엉덩이를 갖다 붙인다.

마침내 해냈구나하는 만족감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쟁반에 식사를 챙겨가지고 들어온 남편이 깜짝 놀란다.

아니, 어떻게 일어났어?”

마냥 누워있으면 안 될 것 같애, 그래서 간신히 일어났어. 움직여야 산대잖아~”

따끈한 국에 이 찬 저 찬 골고루 챙겨온 밥상을 받으니 아까 까칠하게 말 한 게 미안하고 한편 고마운 생각이 들어

잘 먹을 게요~“ 부드럽게 말한다.

 

밥상을 물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팔다리를 휘젓기도 하고 계속 움직였다.

오후가 되니 걸어서 병원에 갈 만했다.

나는 믿는다. 그 선생님의 침 한 번이면 몸이 마술에서 풀리듯 스르르 풀려 가볍게 걸을 수 있게 될 거라는 걸-- 벌써 다 나은 기분으로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택시에 올랐다. (1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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