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서울

부암동-종로문화원 역사 탐방(1)

맑은 바람 2011. 10. 15. 22:57

부암동에 가면 뭐가 있을까?

새벽부터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심상치 않다. 오늘 동행하기로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가 와서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아."

"그래 형편되는 대로 해."

굳이 말리지 않는다. 또 한 친구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날씨도 궂은데 내키지 않으면 오지 마."

홀가분하게(?) 혼자 가기로 했다.

8시 50분까지 집합인데 , 벌써 9시가 넘었는데 오늘 따라 빈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가슴을 졸이며 기다린 끝에 빈 차가 왔다.

"북악산 팔각정 길로 가 주세요."

비안개를 뚫고 구불구불 차가 뜸한 산길로 접어들었다.  부암동 사무소에 도착하니 오늘 답사팀이

웅기중기 모여 있었다. 기다려 달라 소리없이 달려왔지만 일행을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출석 신고를 하고  문화원에서 준비한 떡과 빵과 음료와 물을 받아 든다.

 

                    (1) 반계 윤웅렬 별장-(2)현진건집터-(3)안평대군 집터-(4)창의문

 

부암동 명칭의 유래-그 부침바위는 어느날 개발 바람에 떠밀려 하룻밤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반계 윤웅렬 별장-오늘도 임찬웅 문화해설사께서 수고해 주신다.

 

                      윤웅렬은 한말의 정치가로 일본에 협조하여 특혜를 많이 입었다.

 

                                        1906년 건립 당시의 모습을 현재도 간직하고 있다.

 

                     후손에 의해 증축된 살림채-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겹처마를 썼다.

 

 

                   <청계동천>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를 흐르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신선이 노닐 만하다고 여기어 '동천'이라 함

 

 

 

                   소설가 현진건(1900~1943) 집터  동아일보 재직 당시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의 주역으로 해직 당한 후 이곳에서

                   닭을 키우며 어렵게 사는 중에 소설 집필에 몰두했다. 

 

                   보호수로 보호 받지도 못하는 이 오래된 느티나무는 안평대군과 현진건의 신산한 삶의 자취를 묵묵히 지켜보았으리라.

 

                  현진건 집터 바로 위에 안평대군의 집터가 있다. 이 집이 화근(이곳에서 역모를 꾸민다고 모함을 받음)이 되어

                  안평대군은 죽임을 당함

 

                       조선시대 4소문의 하나-북문, 창의문, 자하문, 장의문이라고도 함- 도성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했었다.

 

                      창의문 천정-봉황이 노닐다

 

                       <창의문> 바닥돌-갖가지 모양의 돌이 숱한 발길에 닳아서 반질반질 윤이 난다

 

                                   <창의문> 앞 느티나무 쉼터

 

                   창의문에서 바라다본, 비안개 속의 북악산

 

         

 

                            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조롱박

 

                                계단이 좁고 경사가 무척 가파르다. 무기를 들고 올라오는 적의 접근이 어렵게 하려는 작전상의 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