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4세의 평범한 ‘어느 노인의 하루’를 기록한다.
아침 8시경에 눈을 뜬다.
출근할 일도 출근 시킬 사람도 없으니 이맘때 일어나는 것이 상례다. 더 누워 있고 싶어도 겨울이라 현관에서 자고 있는 금강이(마당 개)를 얼른 문밖으로 내보내야 되기 때문이다. 한번은 좀 늦게 일어났더니 현관 안에다 오줌을 싸고는 엉거주춤 서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들어와 좀더 뭉기적거리다가 이부자리를 갠다. 옆에 누워 있던 두리(집안 개)자리에서 냄새가 나는 듯해서 향수를 뿌린다. Salvatore Ferragamo-향수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몸에 뿌리면 속이 미식거리는 촌스러움 때문에 내게 향수는 ‘실내 방향제’ 이외에는 별 소용이 없다. 서랍 속에 몇 년씩 잊혀진 채 방치되었던 것들을 꺼내 옷장에도 이불장에도 화장실, 신발장 속까지 열심히 뿌린다.
이 닦고 세수하고 머리 빚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오늘도 눈을 뜨게 해 주시고 또 하루를 열어주신 나의 창조주께 감사의 기도 말을 한다.
부엌에서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세 놈(금강이, 두리, 나비) 밥 챙기는 일이다.
사람이 먹는 음식 가운데 가장 싸고 영양가 풍부한 돼지간이 우리집 반려동물 먹이다. 물론 걔들은 이걸 에피타이저 삼아 먹고 지들 사료를 또 챙겨 먹는다. 이 에피타이저가 없는 날은 금강이가 현관문을 벅벅 긁어대고 소란을 피워서 견디기 힘들다. 오직 ‘먹고 자고 잠시 어슬렁거리고 싸는 일이 주된 일‘-요새는 사람들도 그렇게 사는 이들이 많다.-이라 식사시간이 늦어지거나 하면 현관에서 벅벅거리고 나비는 야옹야옹 대고 두리만 가끔 눈이 마주치면 꼬리를 흔들며 혀를 날름거린다.
서둘러 세 놈의 아침식사를 주고 나면 한갓지게 내 식사를 준비한다.
간편 믹서기에 우유 한컵, 삶은 서리태 세 스푼, 호두 한 줌, 블루베리 한 줌을 넣고 간 후에 렌지에 따뜻하게 덥힌다. 달지 않고 고소하고 든든하다. 전에는 우유가 체질에 안 맞는 것 같아 멀리했었는데 이렇게 먹어보니 아무 문제가 없다.
‘한 지붕 세 식구’가 살지만 식사 시간이 제각각이라 각자 자기 편한 시간에 먹는다. 아침마다 밥과 국과 찌개를 준비해 놓으면 주방 업무는 끝이다.
아침식사 후 컴퓨터 앞에 앉는다.
신문도, TV도 거의 안보기 때문에 인터넷 뉴스 검색을 통해 세상과 잠시 만난다. 나 없이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다. 내가 필요한 곳은 집안과 친지나 친척과 가끔 만나는 어느 한정된 공간일 뿐이다. 그래서 단골 카페를 방문하거나 내 블로그 방문자를 확인해 보는 일은 일간지 뉴스를 보는 일보다 중요하다.
오전 11시 27분,
이즈음 글쓰기-그래 봐야 일기쓰기 정도지만-에 불을 붙인 장본인은 ‘무라카미 하루키’다.
<먼 북소리>는 나른한 일상 속에 안주하던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 지난 1000년 역사 속에 가장 뛰어난 생존 문인 1위에 뽑힌 무라카미-나보다 한 살 아래-가 어떻게 사는지 그의 글에서 소상히 밝힌 것을 읽고는 흉내라도 내보아야 할 것 같아 <2012년은 매일 일기 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 믿을 수 없어~~)했다.
글쓰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만족으로 글을 쓴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글도 더러 있지만 공감하는 소수의 독자라도 있으면 그 정도로 만족한다.
507쪽에서 지금 279쪽까지 왔다. 어느 재미있는 영화 못지않게 재미있는 여행기(수필)다. <상실의 시대>-무라카미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로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만난 건 행운이다. 대학 졸업 후 소설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지만-삶이 더 드라마틱하니까-이 <상실의 시대>는 잘 읽힐 것 같아 기대된다. 이 여행기 속에 <상실의 시대> 집필 당시 분위기가 그대로 적혀있으므로.
오전 글쓰기는 고만 하고 커피 한 잔 후에 <먼 북소리>를 들어야겠다.
3시 50분-
한나절 내리 책을 들고 앉아 있는 일은 젊어서나 가능한 일-눈이 침침해 오고 허리가 뻐근하다.
모자를 챙겨 쓰고 잠바를 가볍게 걸쳐 입고 등산화를 신는다. 금강이를 앞세우고 남편도 따라 나선다. <경신고> 정문 앞을 지나 <서울과학고> 쪽으로 건너서 <와룡공원> 입구로 들어간다. 바람이 없어 걸을 만했다.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를 오르니 몸이 훈훈해진다. <명륜 어린이집> 담장이 낮아지고 출입구가 새로 생겼다. 봄이 오면 새싹 돋아나듯 보얀 얼굴의 유아들이 모여들어 종종거리며 뛰어다니겠지?
드문드문 殘雪이 있지만 메마른 산길에 먼지가 풀풀 날린다. 꼭대기 쉼터에 이르러 잠시 숨을 돌리면서 금강이에게도 물 한 병 사서 먹인다. 사람들이 금강이를 두고 하는 말은 극과 극이다.
“그놈 잘 생겼네~”
“와, 멋있게 생겼다!!”
젊은이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와 같고, 나이 지긋한 이들은
“아유, 무서워, 송아지만하네!” 하며 뒷걸음친다.
사실 금강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썩 편하지는 않다. 오가는 사람 심기 불편하지 않게 길 비켜 줘야하고 지레 겁먹는 사람 안심하게 한쪽 구석으로 밀어 붙이기도 하고--
이건 산책을 하는 건지 개를 모시고 다니는 건지--
하산 길에 매화나무 줄기를 만져 본다. 돌이 주는 차가움이 없다. 잎을 모두 떨군 채 알몸으로 서 있지만 겨울나무의 체온이 전해진다. 산에 들면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나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보다 푸근함을 느끼는 것은 산의 나무들이 내놓는 온기 때문인가 보다.
오후 5시 30분,
바로 세 놈들 밥부터 먹이고 저녁상을 차린다. 남편이 끓여놓은 조기찌개 맛이 좋았다. 적당히 건조된 조기의 살이 쫄깃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이런저런 반찬들로 가지 수가 많았는데 지금은 먹을 만한 반찬 한 가지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힘들여 식탁을 풍성하게 하려는 마음이 없어졌다. 간소하면 간소할수록 좋다. 반찬 가지 수가 줄고 정성과 솜씨도 줄고-- 먹거리와 입을 거리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것-늙어가는 증거다.
오후 8시 30분,
<먼 북소리>가 130쪽 정도 남았다. 다 읽는다 하더라도 감상문을 쓸 기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책을 편다. 30분이 못되어 눈꺼풀이 스르르 풀린다.
‘책 앞에서 조는 버릇’-역사가 오래다.
학창시절 시험공부 한다고 嚴冬에도 마당으로 나가서 찬물 세수하고 들어와 꼿꼿이 책상머리에 앉는다.
30분이 맥시멈이다. 끄덕끄덕 졸고 앉았는 걸 눈치채신 엄마가 총채로 어깨를 탁 친다.
“앗, 깜짝야~” 다시 정신이 돌아온다. 이러기를 서너 번, 비로소 잠이 달아난다.
그런데 엄마는 작은딸한테도 효과가 있을 줄 알고 똑같이 해 본다.
‘어랍쇼~~’
한 대 얻어맞은 작은딸은 책과 노트를 탁탁 덮고 이부자리로 말없이 들어간다.
‘엄마 몰랐지? 그런 방법은 착한 큰딸한테나 먹히는 거야~.’
아이들 학교 다닐 때 엄마가 가르쳐준(?) 방법을 나도 써야지 하며 총채를 들고 아이들 방으로 가서 뒤에 앉아 있는다. 물론 손에는 내가 읽을 책을 들고.
아이가 공부하다가 슬그머니 뒤를 돌아본다. 책은 무릎 아래로 미끄러지고 끄덕이며 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 차라리 들어가 주무세요, 오히려 공부에 방해돼요~~”
여지없이 추방명령이다.
지금도 잠들기 전에 습관적으로 책을 들고 이부자리로 들어간다. 따뜻한 이불 속이니 졸음은 더 빨리 찾아온다.
슬그머니 누가 책을 빼간다.
“할망~ 편히 잠이나 주무시지?”
‘책’은 내 체질에 잘 맞는 수면제인가 보다.
잠기운을 쫓으려고 TV를 켠다.
EBS HD에서 ‘한국 기행’, 최재천의 ‘공감’을 보여 준다. TV에서 처음 보는 최재천 교수의 음성과 발음과 강의내용이 들을 만했다.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그러나 내가 읽어낸 것 겨우 15페이지~ 잠이 나를 고문한다.
‘됐어~ 그만 자. 무슨 과거를 보겠다고 책과 씨름을 하는 거야?’
내 안의 타이름을 듣고 그만 책을 덮는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찾아왔다.
스스로에게 고단한 하루를 제공하고 이제 밤 깊어 마침내 쉼표를 찍는 시간-미리 깔아 놓아 따뜻한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간다.
두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팔짝팔짝 뛰다가 내 옆자리로 쏘옥 들어온다.
머리가 핑그르르 돈다.
밥 11시 25분이다. (2012.1.9 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