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난(2009.5.9.) 며칠 후 그녀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사들었다.
그 후 책꽂이에서 3년- 하루키의 에세이 <먼 북소리>를 읽고 나서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둘 사이에 아무 연관도 없는데 말이다.
이 책은 2000년 8월 탈고해서 2000년 9월 초판되었고 9년 뒤 작가 장영희는 세상을 뜨고
당시 추천하는 글을 쓴 정채봉님도 박완서님도 모두 고인이 되었다.
12년은 참 긴 세월인가 보다.
장영희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작가와 같은 대학을 나온 동창 몇몇이 ‘장영희’의 죽음에 대한 소감을 나눈다.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너무 일찍 가서 안됐어. 불편한 몸으로 고생도 많았을 텐데--”
“아버지 유명세를 타고 잘산 거지 뭐, 알려지지 않은 장애인 가운데 유능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서로 이렇게 엇갈린 시각으로 말한다.
장영희의 솔직 담백한 글을 읽노라면 ‘수필은 내면의 고백’이라는 말이 피부로 전해온다.
‘어떻게 그토록 솔직할 수 있을까?
슬쩍슬쩍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본능을 넘어설 수 있는 걸까?’
-이 글들은 바로 나다. 발가벗고 일반 대중 앞에 선 나다.
글 솜씨가 꽤 좋은 친구가 있는데 登壇 이후 아예 붓을 놓고 산다.
“글 좀 쓰지 그러니? 네 가족사만 그려도 드라마틱한 얘기가 나올 텐데--”
그렇게 말했더니
“나는 솔직하게 나의 허물까지도 모두 드러낼 수가 없어. 부끄럽고 당사자한테 미안하고--”
공감이 가는 말이다.
나도, ‘어머니에 관한 글, 가족에 관한 글’을 읽은 오빠와 동생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
한동안 그들과 서먹해진 때가 있었다.
그 후로는 아무래도 소재의 제한을 받게 된다.
사실대로 솔직하게 쓰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생명체중 인간으로 태어날 가능성이야말로 넓은 들판 가득히 콩알을 널어놓고 하늘 꼭대기에서
바늘 한 개를 떨어뜨려 콩 한 알에 박히는 확률과 같다고 한다.
-우리의 태어남은 생각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의 약속이다.
-<문학의 궁극적 주제>는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다.
-나한테 속지 마세요. 침착하고 당당한 멋쟁이로 보이는 것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지요.
나는 당당함의 가면을 쓰고 필사적인 게임을 하지만 속으로는 벌벌 떠는 작은 아이랍니다.
나는 바로 당신입니다.-작자 미상<가면>
-오늘은 언제나 지상에서의 내 나머지 인생을 시작하는 첫날이다.
-누가 말했던가, 사랑받는 자는 용감하다고. 사랑 받은 기억만으로도 용감할 수 있다고.
-대학교 2학년 여름, 며칠 동안 두문불출하고 읽었던 19세기 미국작가 허먼 멜빌의 백경은 방황하는
나의 영혼에 지표를 제시해 주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닿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해 끝없이 발돋움하는
그의 모습은 내가 닯고 싶은 모습, 당당하게 삶과 맞서고 도전하는 용기를 가르쳐 주는 모범이었던 것이다.
그녀가 결정적으로 몸을 상하고 병을 얻은 계기가 ‘영어교과서 집필’ 때문 아니었나 생각된다.
하루 2시간도 못 자고 일한 다섯 달 동안 8kg의 체중 감소, 그 후로도 6년을 아버지의 명예에 손상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맘으로 일에 매달린 결과가 그녀에게 치명상(암이라는 불치병)을 입힌 것이리라.
-보통밖에 안 되게 보일 듯 말 듯 가늘게 살아도 오래 살고 싶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하느님의 필적은 우리 육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잉크로 씌어져서 영혼의 아름다움을
찾는 이만 읽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글 말미에 ‘킹콩의 눈’이라는 글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자신을, ‘사랑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슬픈 킹콩’에 비유했다.- Y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냈다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을 때.
그녀는 이듬해 뉴욕주립대학으로 가면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녀는 더 이상 차가웠던 세상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사랑하는 아버지 곁에서 포근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까?
안녕, 장영희!
당신의 꿋꿋했던 생의 의지에 갈채를 보낸다. (2012.1.25 수)
'책 ·영화 ·강연 이야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은 마음에게 속고 있다> (0) | 2012.02.04 |
---|---|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0) | 2012.01.31 |
<먼 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 作/윤성원 옮김 (0) | 2012.01.19 |
역사의 미술관/ 이주헌 (0) | 2012.01.03 |
<죽은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닥터 월렉 강연 (0) | 201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