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영화 ·강연 이야기/책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맑은 바람 2012. 1. 31. 16:47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종일 읽었다.

<그러나~>는 장왕록의 글을 장영희가 엮은 책의 제목이다.

글의 제목은 장왕록 교수가 전공한 작가 헨리 제임스의 <귀부인의 초상> 중에 나오는 대사다.

알뜰한 딸이 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해서 제목을 발췌한 것이리라.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은 <가던 길 멈추어 서서>였는데 이 제목도 영국시인 윌리엄 데이비스의

<餘暇>에서 인용한 것이다. 절판되었으나 이 책에서 그 글의 대부분을 만날 수 있다.

이 시는 장왕록 교수의 인생관을 보여준다.

 

<餘暇>

 

근심 걱정으로 가득할 뿐, 가던 길

멈추어 서서 아무것도 눈여겨볼 시간이 없다면

이 세상 삶이 어떠한 것이 될까?

 

나뭇가지 아래 서서 양이나 소들처럼

물끄러미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숲을 지날 때 다람쥐들이 호두를

풀섶에 숨기는 것을 볼 시간이 없다면,

 

한낮 햇살을 받아, 밤하늘에 가득한 별들처럼 반짝거리는

냇물을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눈길에 고개를 돌려

춤추듯 걸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을 눈여겨 볼 시간이 없다면,

그녀의 눈웃음이 입가에서 활짝

피어나기를 기다릴 시간조차 없다면,

 

근심걱정으로 가득할 뿐, 가던 길

멈추어 서서 아무것도 눈여겨볼 시간이 없다면

이 세상 삶이 얼마나 가난한 것이 될까?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는 관계로 맺어진 부모 자식 간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자의건 타의건 서로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거나 同床異夢의 가족들 또한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듣는 순간 내 우주에 구멍이 뚫렸다.”고 표현한 장영희-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 번>을 읽으면서 그토록 신뢰하고 사랑하는 아버지 장왕록은 어떤 분일까

자못 궁금했다.

 

1960년대 중반 미국 문학 작품의 대부분의 譯者 이름에서 장왕록을 익히 보아왔다.

이름에서 주는 이미지가, 巨軀에다 뚱뚱하고 머리는 곱슬머리이며 頭狀이 클 거라는,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그분을 상상했다.

그러나 이 책 표지 안쪽에 따님과 나란히 앉아 있는 장교수는 군살이 없고 단단한 체구와

소박한 웃음을 지닌 분이었다. 상상이 엇나가 생경한 느낌이다.

 

그는 누구인가?

*한국 영문학 연구와 교육의 산 역사

*호는 又步’-‘내 건강을 돌봐 주는 두 의사가 있는데 그건 오른다리와 왼다리다.‘는 신념으로

그는 걷기를 생활화하고 즐겼다. ‘걷고 또 걷는다는 그분 아호처럼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외국문학 번역을 필생의 부업(?)으로 여겨 50여권의 미국 문학작품 번역을 했다.

(그를 통해 우리가 만난 미국(영국)작가들-헨리 밀러, 존 업다이크, 펄벅, 윌리엄 데이비스, --)

*낭만적 사랑을 간직할 줄 알았다.

*남의 장점을 속속들이 알아내 기꺼이 칭찬할 줄 알았다.

*재능 있고 할 일 많은 그를 어느 날 갑자기 동해바다의 푸른 파도가 삼켜버렸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친구와 가족 친지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시-

 

<思友譜>

-테니슨-친구 아더 헬람의 죽음을 哀悼한 시의 일부

(문학사상 최고의 悲歌의 하나)

 

I envy not in any moods

어떤 일이 있어도 난 부럽지 않네

 

The captive void of noble rage,

고귀한 분노를 모르는 포로가,

 

The Linnet born within the cage,

여름 숲을 알지 못하는

 

That never knew the summer woods:

새장에서 태어난 방울새가.

 

I envy not the beast that takes

난 부럽지 않네, 시간의 들녘에서

 

His license in the field of time,

제멋대로 뛰어 놀며

 

Unfetter’d by the sense of crime,

죄책감에 얽매이지도 않고

 

To whom a conscience never wakes;

양심도 깨어있지 않은 짐승들이

 

Tis better to have loved and lost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것보다

 

Than never to have loved at all.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나으리.

 

 

아래 시는 장왕록교수가 존경하는 조지 레이너 교수로부터 작별의 선물로 받은 시다.

(조카 졸업 선물로 주어야지~~)

 

<소녀들에게 주는 충고>

-17c 영국시인 로버트 헤릭

 

장미 봉오리를 모을 수 있는 동안 그것들을 모으라

세월은 예나 지금이나 계속 날아가니

오늘 미소짓는 바로 이 꽃이

내일이면 지리니

 

하늘의 영광스러운 등불인 해가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그의 경주는 곧 끝날 것이고

일몰에 더 가까와지리니

 

젊음과 피가 따뜻한

첫 시절이 가장 좋고

그것이 지나면 더 나빠지고

가장 나쁜 시절이 잇따르리

 

그러니 수줍어 말고 시간을 활용하라

그리고 결혼할 수 있을 때 하라

청춘을 한 번 잃어버리면

너희는 영원히 기다려야 하리